2016년 6월 15일부터 정선에서 일하고 있다. 벌써 2월 말이니 올해가 다 갔다는 내 식대로 계산하면 3년이다.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 3이라는 숫자가 무겁다. 가끔 동료들에게 출근길에 산을 보면서 욕 한다는 농담을 하는데, 진짜 욕하면서 출근하는 날도 있다. 정선읍은 '나무위키'의 설명처럼 험준한 산들이 사람을 옥죄는 형국이다. 

답답하다

얼마전에 통기타 동아리에 가입했다. 모임에 두 번 갔다. 한 명 빼면 딱히 잘 치는 사람이 없는데, 모임에 가입한 것 만으로도 내 연습에는 속도가 붙는다. 2년만에 기타줄을 갈았고 어제도 혼자 연습실에 가서 한참 놀았다. 공연을 자주 한다고 하는데 - 벌써 3월 말에 공연 하나 잡힘 - 그 동안은 내가 기타를 쳐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연습에 흥이 없없던가, 싶다. 내일도 연습날인데 기대가 된다. 오늘 점심밥 먹으면서도 시큰한 말투로 인간이 멸망해야 된다는 소리를 했던 내가 기타 동아리에 가입한 것 만으로도 어떤 흥분을 느낀다는 게 웃긴다.

회사는 인사폭풍이 지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내가 무난히 결재 올리면 무난히 결재가 난다. 원래 둘이 할 일을 혼자하게 되서 심적 타격이 있었는데 - 어차피 작년에 혼자함. - 무사히 적응했다. 사람 한둘 바뀐 게 영향이 크다.

후지이 다케시의 칼럼집을 읽었는데, 페친들 공유로 읽었던 것도 있지만 다시 보니 새로웠다. 공무원 세계에 있다보니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주어진 작은 책임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법대로 한다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법대로 진행된 식민지배와 군부독재가 가능했다는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법대로 진행했는데 민원인이 만족하는 것이 현재 직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라고 생각하는데, 법이란 게 기본으로는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쪽이 같이 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3월 2일에 이사한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2015년에 강릉 올 때보다 재산이 불어났기 때문일까? 빚 없으면 부자인 세상이다. 국가도 기업도 다 빚으로 돌아가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결국은 인류 멸망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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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영 이발소

친구와 이름이 같다
그래서 찾아갔지만
그래서 단골이 된 곳은 아닌 곳
6.25. 전쟁 전후로 태어난 아저씨들의 사랑방
순서를 기다리거나 머리를 자르며 항상 듣는 이야기
누구누구 장사치렀잖아
그 집이 형제가 몇이잖아
죽음이 자연스러워진 사람들의 말
나도 언젠가는 그리로 갈 테니
이발소에 다니는 일이
아저씨들 이야기를 듣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미끈하게 면도까지 마치고
얼굴을 쓰다듬으면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드는 곳
돈 천 원 정도는 다음에 올 때 갖다줘도 되는 곳
늙은 손과 날카로운 칼에 얼굴을 통째로 맡기고도
깊게 내뱉는 한 번 숨으로 편안해 지는 곳
고맙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하고 나오게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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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집

셋집을 구하다 보면 안다
세상에 건물과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안에서 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작 내 것은 없다
집주인과 마주앉아 계약서를 쓰면서
건물이 몇 개나 있다는 이 사람은 못된 사람이 아니길
내 돈 떼먹을 사람이 아니길 빌면서
처음보는 사람에게 주인님이라고는 못하겠고 사장님이라고 하면서
정말 내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부동산을 나와 피워문 담배 연기가
아내의 푸념을 따라 하늘로 사라지면
조금은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내 것은 없고
이 세상에는 아내랑 나 뿐인 것을 안다

-> 대출 알아보러 은행 가야됨. 진짜 조금 어른이 된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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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전문예방진화대 시험에서 탈락하신 선생님한테 아침8시에 전화가 왔다. 떨어져서 속이 상했는데 나랑 통화하면서 진정이 됐고 고맙다고 하셨다. 속상한 일로 나한테 전화주셨고 고맙단 말까지 들으니 내가 더 고맙다.

 연휴 중에 우리회사에 잠깐 있다가 지방직 공무원으로 간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만취한 그 친구가 정선에 있을 때 신경 써 주고 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특별히 그 친구에게 더 신경 써 준 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작년 어느날 메모장에 '술 취해서 내게 전화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고 적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사갈 집을 보려고 연가 쓰고 강릉에 왔다. 오던 중에 영일군과 통화를 했다. 몇 가지 이야기가 오가고 전화 끊을 때 즈음 목소리 들으니 좋다고 했더니 영일군이 웃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어제 점심을 먹는데, 심석희 뉴스가 나왔다. 내 맞은편에 앉아서 뉴스를 보던 나이 많은 회사 사람이 시집은 다 갔다. 시집 가겠나? 라는 쓰레기 멘트를 날렸다. 찰나의 시간 동안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대가 바뀌어서 결혼도 할거고 지금 현재 애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무 리액션도 돌아오지 않았다. 화내지 않고 잘 처신했다고 생각한다. 

 강릉에는 심속희 응원 현수막이 많이 붙었는데, 석희 아빠 친구들이 만들어 붙인 것도 있다. 그 아저씨들 중에서는 선거 때마다 자유한국당을 찍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 곤돌라를 살리라고 데모하는 사람들 중에 자동차에 세월호 스티커를 붙인 아저씨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학연, 지연, 혈연. 혈연은 약간 다를 수도 있는데 연이란 게 다 이해관계다. 삶이란 게 다 이해관계다.

 회사에 인사폭풍이 지나고 많은 연들이 바뀌고 있다. 삶이란 그런것이니까 또 맞춰 살아지겠지. 어떤 인연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갈 집 알아보러 가기전에 봉봉에 첫 번째 손님으로 와서 적는다. 1등이 다 좋은 건 아닌데, 봉봉에 1등으로 온 건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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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명절에는 명절에만 있는 일이 있지

​고강알루미늄 노조원들 차가운 복도에 차례상
야간근무 중이던 50대 남성,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
설 보너스는 커녕 "밀린 임금이라도 주세요."
설 연휴에도 늘어난 슬픈 노인 고독사
​그리고,
인천공항 이용객 역대 최고

​해외 여행이 나쁜일은 아니지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한 건 아니지
꼭 명절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
손 쓸 수 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이렇게 만들었을 뿐이지

매일 있는 일인데
유독 명절에는,
명절에만 있는 일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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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담배를 한 갑 사는 바람에 후회로 시작된 하루
말미에 아내랑 같이 영화  '가버나움'을 봤다.
영화가 끝나고도 머릿속에 씨팔이 멈추질 않는다.
이사는 개코나 아무데나 대충 구해서 가야겠다. 씨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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