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뭔가 높게 설정해 놓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페북에서 이런 글을 읽었고 무례와 겸손에 대해서 생각중이다. 일주일 째.

직장에서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과 대충 해야지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갈팡질팡 한다. 일단 내 일은 열심히 하는 것이 맞겠지. 나를 높게 설정할 경우 내 할일만 딱 하고 나머지는 무시하거나 대충해야지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일은 그런데, 사람은 어떤가? 나한테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을 어찌할까? 그 사람은 꼭 내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마음이 격할 때는 확 찢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속이 상하면 우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막 울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게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좀처럼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다. 주말에 강릉에서 잘 놀았는데도 그렇다. 어제는 낮술을 마셨다. 술을 먹고 밖에 나왔는데도 화창했다. 봄은 그런 것인데, 나는 계절과 반대로 가는 기분이었다. 춘분도 지나고 낮이 길어지니 괜찮아 질거야. 내가 내게 해주는 최고의 위안이다. 이런것도 위안이라고. 웃긴다.

오늘 새벽에 깨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잠든 아내 얼굴을 본 일이 최근에 가장 큰 위로였다.

이 와중에 내 냄새는 아버지 냄새를 닮았다. 알고는 있었는데, 유전이란 게 냄새도 닮는구나. 무섭다.



냄새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땀 흘리고
하루만 안 씻어도 몸에서 냄새가 난다
어릴적 인상을 쓰게 만들었던 냄새
지독히 싫어하던 아버지 냄새
냄새까지 닮아버리는 유전
아이는 없지만
훌쩍 커버린
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는
아버지 냄새가 싫지 않은 나이
AND

친구

친구는 부자가 됐다
나는 검은 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누구나 심장은 붉지만
마음의 바닥은 검다
내가 우는 동안 부자가 된 친구
친구는 이혼을 했다고 했다
나는 아내와 사이가 좋다고 했다
친구는 아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없다고 했다
친구는 돈이 부질없다 했다
나는 삶이 허망하다 했다
친구가 이제 그만 울라고 했다
그 말에 눈물이 터졌다
물결 무늬의 등심을 앞에 두고
친구도 울었다
마음의 바닥엔 무늬가 없다
AND

쓰레기

더러운 걸 집 안에 두지마
안은 깨끗해야 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다 쓰레기
산이 되든 섬이 되든
나는 거기 살지 않으니까
산과 섬이 모여 세상이 되고
오늘은 외출 하는 날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다 쓰레기

->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다 쓰레기란 생각
AND



네가 나를 지켜준다는 기분이 들었던 밤
많은 꿈과 많은 깸
눈을 떴을 때 내 옆엔 너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안아주는 너
이를 가는 너
내 몸에 발을 올리는 너
내 눈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너
뒤척이는 너
그렇게 나를 지켜주는 너
밤이 지나고
수화기 넘어 목소리로도 나를 지켜주는 너
멀리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너
나도 너에게 그러했으면
너도 사랑이라 느꼈으면
많은 밤들이 네게도 속삭였으면

AND

만두를 먹다

아내랑 만두를 먹는다
마트에서 두 봉지씩 묶어서 파는 만두를
만두의 자존심이라고 포장지에 자신있게 새겨 넣은 만두를 
고기 잡채 야채가 섞인 만두를
간장 식초 고춧가루 섞은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만두를 빚던 손들은 다 과거로 사라지고
기계손으로 빚은 만두를
기계처럼 정확한 맛의 만두를
몇 개의 질문은 가슴속에 물려두고
맛있게 먹는다
두 봉지 다 먹는다
AND

어쩔

어쩔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거나 그만두거나

너에게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너처럼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태이므로

아직은 순응자도 아니고 배신자도 아닌
어쩔 줄 모르기에 어쩔 수 없는
AND

파국

선물 받은 컵을 깼다
무심결에, 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좀처럼 의도하지 않는 일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니면 그 반대인 사람 앞에서
예상에 없는 파국을 예상한다
생을 아우르는 무력감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은 잠깐보다도 적었다
조심했지만
당연하다는 듯
파편을 주워낸 맨살에 피가 났다
AND



지금 여기가 아니더라도
살아있다면
어딘가에는 봄이 온다
봄이란 말 안에 이미 봄이 있으므로
봄봄, 봄봄봄, 부르면
봄은 이미 와 있다
봄은 보는 것이라 봄이라서
세상이 싫어 눈을 감은 사람도
살아만 있다면 봄을 본다
꿈틀대며 오는 봄을 온 몸으로 본다
AND

갈비탕을 먹다

입구에 돼지가 웃고 있는 갈비집
숯불에 굽지 않으면 갈비도 아니지
수천만명이 일 년에 한 번은 먹을 수 있을만큼
많은 갈비와 그보다 훨씬 많은 숯이 함께하는 세상
갈비를 못 시키고 갈비탕을 먹는다
너랑 나랑 둘이
우리는 가족
건너 테이블엔 엄마와 아빠와 딸 그들도 가족
옆 테이블엔 엄마와 세 자녀 아빠는 없지만 그들도 가족
아빠가 없던 테이블에 초밥을 사들고 나타난 아빠
초밥과 갈비
아빠와 딸은 닮았다
엄마와 아이들이 닮았다
물고기와 육고기처럼
너랑 나도 닮았다
돈 몇 천원 때문에 갈비 대신 갈비탕을 시켰지만
같은 걸 씹어 먹으니
숯불과 갈비처럼
우리는 한 식구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