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5/01 | 5 ARTICLE FOUND

  1. 2015.01.31 20150131 - 어쩌다 하나씩
  2. 2015.01.27 20150127 - 어쩌다 하나씩
  3. 2015.01.27 20150127 - 이런저런
  4. 2015.01.18 20150118 - 이사
  5. 2015.01.11 20150111 - 이런저런

입장(立場)


공룡이 천 만년 동안 서서히 멸망해 가는 것을 지켜본 지구를 생각한다
지구의 입장을 생각한다
일 만년 동안 흥망인지 멸망인지를 하고 있는 인류를 바라보는 지구를 생각한다
지구의 입장을 생각한다
지구에서 이것저것 꺼내 쓰고 있는 인간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것을 내버려 두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는 지구의 입장을 생각한다

너와 헤어진지 20년이다
내 안에서 아직 멸망하지 않은 너를 생각한다
너의 입장을 생각한다
나의 입장을 생각한다

입장 입장 입장
지구와 인간과 당신의 입장
그리고 나의 입장
오늘따라 입안이 쓰다

AND

금연


밥을 먹고 옥상에 올라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 담배를 태우는 지금을 마음속 깊숙히 담아운다
들이킨 연기들이 마지막 인사를 폐속에 새긴다
그 동안 고마웠다고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고
거나하게 취하고 그래서 토하고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해장술을 먹고
어느 선술집의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비를 피하고
키스를 하고
네 몸에 내 몸을 찔러 넣고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배가 고프고 마음이 텅 비고
잠을 자고 다시 눈을 뜨기까지

너와 함께한 순간들은
나의 일상은
나의 인생은
이제 어디에 기록될까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조차 거부하는 삶을 살까

오늘 담배를 끊었다



- 열심히 하자는 결심으로 어쩌다 하나씩이라도 올려야겠다.
AND

 제목에 26일을 적었으니 십 분 안에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길어져서 제목을 27일로 바꿨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계속해보겠다는 이야기다.

<오늘 저녁에야말로 나나에게, 그렇게 결심했는데 뜻밖에도 출근길,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묻고 말았다. 아침저녁으로 안개만 고일 뿐 여전히 비 소식은 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임박했다. 임박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습도가 하루하루 굉장해서, 낮이고 밤이고,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몸이 끈적끈적해졌다. 안개에 관해 말하자면, 온갖 냄새가 그 속에 있었다. 씻기지 못해 자질구레한 냄새를 더해가는 대기의 냄새가 안개에 배어 있었고 밤새 안개에 잠긴 거리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이날 아침 출근 길에도 그런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침인데 벌써 무더웠다.>

 

 여기를 읽다가 이날 아침, 오늘 아침, 아침 중에 이날 아침을 고른 작가의 마음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날이 없이 그냥 '아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그래도 이날 아침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을 마무리했다. 작가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별 이유도 없이 멍하니 한참을 생각했다.

 

 

 이사 - 벌판을 나와 벌판을 지나 벌판에 도착했다. 대관령을 넘기 전에 힐끔힐끔 내리던 눈이 고개를 넘자마자 비가 되어 뚜벅뚜벅 차창을 때렸다.

 이렇게 시작해서 좀 더 읽기 좋은 걸 써 보고 싶다.

 

 집 정리가 대충 끝났다. 3월부터는 일을 하게 됐는데, 2월에도 뭔가를 하고 싶다.

 지난 주말에는 예전에 농업교육 함께 받은 형들이랑 놀았다. 교육 받던 시절을 얘기하며 즐거웠다. 국제 시장과 토토가의 흥행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시절을 함께 추억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추억에 먹었던 것이 빠지지 않는다. 나이 먹고는 다들 어려서 먹었던 것을 찾는다. 역시나 추억팔이 장사를 해야할까? 

 

 우리집은 주인집 뒤에 따로 조립식으로 지은 세 채의 집 중에 가운데 집이다. 오늘 아침에 우리 왼쪽집에 홀로 사는 아저씨가 우리 오른쪽 집에 아내와 함께 사는 아저씨와 나를 초대해서 이웃들과 인사를 했다. 가난한 이웃이 가난한 나를 초대해서 아침부터 소주를 한 잔 마셨다. 가난이라는 말은 한자어인데, 집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고 어렵고도 어렵다는 간난(艱難)을 가난으로 읽는다. 가난 가난 가난 하고 읽기만 해도 울컥함이 밀려드는 예쁜 말이다. 이웃의 아저씨들은 아직 젊으니 뭐든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예'라고 했겠지. 

 오후에는 고모가 하는 수선집에 들렀다. 조카 내외가 강릉에 산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고모가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아요. 고모는 많이 늙었다. 고모에게 많이 늙었다고 했더니 고모가 그럼 많이 늙었지라고 했다.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늙지도 않고 그대로시네요.같이 입에 발린 말보다는 솔직하게 말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모가 좋다는 얘기다. 

 

 핸드폰으로만 글 올리다가 오랜만에 키보드 두드릴라니까 어색하네. ㅋ

AND

20150118 - 이사

그때그때 2015. 1. 18. 17:27
지난 목요일에 이사했다. 오후 네 시가 넘어서 강릉에 도착했다. 짐이 별로 없고 1층에서 1층으로 가는 것이라 이사 아저씨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이사였다. 두고 올까 하다가 가져온 장농이 작은 방에 쏙 들어가줘서 기분이 좋았다. 이것저것 구입하고 정리하고 정리하고 정리해서 대충 짐정리가 끝났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인간은 짐(burden)과 함께 살아간다.

도배랑 장판을 새로한 집이다. 싱크대랑 세면대도 새거다. 전기 공사도 추가로 했다. 우리가 살기에 딱 적합하다. 다만, 문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출입문이 안 잠긴다. - 해결할 수 있을까? - 화장실 문이 안 닫힌다. - 이건 해결 가능하다. - 새로 설치한 전기 콘센트가 먹통이다. - 안 쓰면 그만이다. - 세면대에 물을 받아 쓸 수 없다. - 안 쓰면 그만인데, 날림 공사다. 물 마개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걸 안 달아놨다. - 샤워기가 새건데 물줄기가 시원찮다. - 이것도 날림 공사다. 내가 새걸로 달았는데도 상태가 그대로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그냥 두기로 한다.

우리집은 강릉시 홍제동이고 강릉 초등학교 옆이다. 주택가라 조용하다. 아내의 친구 편의점이 집 근처에 있다. 시내 중심가까지 걸어서 15분 거리다. 고속버스 터미널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도서관도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한살림 매장이랑 큰 슈퍼가 가까이에 있고 홈플러스 때문에 쇄락한 서부시장도 가까이에 있다.

적어 놓고 보니 출입문이 안 잠기는 것만 빼면 좋은 곳이네.

집 1km 안쪽에 중국집이 20개다. 그 중에 두 곳에서 짜장이랑 탕수육을 먹었는데, 다 별로였다. 이순신에게 12척의 배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아직 18곳의 중국집이 남아있다.

진정한 광랜을 쓰게 됐다. 근데 생각보다 기쁘질 않네. 내 또래로 보이는 kt 설치기사가 자기가 30년 넘게 이 동네에 살았는데 살기 안 좋다고 했다. 이 양반의 인생엔 좋은 일보다 안 좋은일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어제는 중앙시장에 뜰깨 들고 가서 기름을 짰다. 작년에 깨 농사가 잘 됐다. - 재작년에 너무 안 됐거나. - 기름 적게 나와도 좋으니 반만 볶고 짜 달라고 했는데, 기름이 많이 나와서 방앗간 주인 아저씨가 당황했다. 8킬로 중에 1킬로가 남았다. 깻모를 부으면 좋겠지만 올해는 포기한다. 텅빈 냉장고를 5퍼센트 정도 채웠다. 김치가 없어서 들기름과 달걀로 간장 볶음밥을 해 먹었다. 따봉으로 맛있었다.

볼음도 집이 참 좋았다. 2년 후엔 다시 시골집에 살거다. 그 집에선 지금 이 집이 참 좋았다고 하겠지. 사람들은 항상 지나간 것만 좋아한다. 추억팔이 장사를 할까보다.

강화에서 그랬듯이 강릉에 도착했으니 직업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퇴근후엔 그대와 원두커피든 뭐든 마시자. - 씨 없는 수박 '유정천리' 가사 중에서 -

AND

2015년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끝나지 않는 모험의 세계(드퀘 8)에 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술을 먹는다. 새해 계획은 좋았네요.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들 속에 사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에 588 종점 멤버들과 술을 먹었다. 장소는 y네 집, 안주는 흐릿하게조차 그려지지 않는 서로의 인생과 아내에 대한 불만이었다. -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날 오전에 아내 때문에 기분이 상했었다. - 며칠만에 기억도 못할 대수롭지 않은 일에 혼자 삐쳐서 대취했다. 다음날 9시에 일어났다가 입만 축이고 다시 잠들었고 16시에 정식으로 깼다. 전날의 동지인 y는 휴가를 썼고, 건쓰짱은 지각을 했다. 불만만큼 취하는 정직한 우리들이다. 아내는 화가 났고 강릉행은 하루 미뤄졌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좋았네요.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지 말자.

지난 수요일에는 강릉에 집을 구했다. 전세 계약서를 쓰면서 생각했다. '이런 중대한 일에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사는 1월 15일이다. 계약서를 쓰고 이사날짜를 잡고서야 끝나지 않는 현실 모험의 세계로 돌아올 준비가 됐다.는 기분이다.

아내 친구 아이랑 하루 놀았다. 어제는 낮에 그 아이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저녁에는 아내 지인이면서 내 페친인 친구들과 신년회를 했다.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이것저것 먹고 마셨다. 어제는 마음속으로도 마음 바깥으로도 좋은날이었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취하기는 누구랑 마셔도 마찬가지인데 어제 분위기는 지난 월요일과는 많이 달랐다. 이러나저러나 다 친구들이다.

장인어른, 장모님을 만났다. 딸과 사위에 대한 장모님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불만이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운동화를 하나 사주신 것은 고맙게 받았는데, 이사비용을 건내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받았다. 이것도 다 아내를 잘 만난 내 복이려니 생각한다. 글 속의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데 현실의 나도 긍정적이다.

주거니 받거니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아직까지 내 인생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이렇게 빚더미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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