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4/02 | 5 ARTICLE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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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02.23 20140223 - 화장터에서
  3. 2014.02.21 20140221 - 볼음도 1년
  4. 2014.02.09 고양이 망고 15
  5. 2014.02.04 20140204 - 유기농

20140227 - 기록

그때그때 2014. 2. 27. 15:06

아홉시, 눈을 떴다. 안경을 쓰고 잠들었네. 어제 뭣한다고 그렇게 마셔댔을까. 우리는 늦도록 마시고 노래도 불렀지. 숙취가 있다. 열시엔 집을 떠나야 한다. 양치질만 하고 짐을 챙겨 집을 나온다. 아버지가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럴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652타고 화곡역으로 화곡역에서 송정역으로 송정역에서 3000번을 고촌에서 22번을 양곡터미널에서 60-3번을 탔다.
대곶으로 가는 길에 60-3번 버스가 빠르게 달린다. 버스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운전기사님 과속하지 마세요. 몇 번을 반복해도 버스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운전기사 과속하고 있잖아.로 멘트가 바뀐다. 운전기사는 기계를 무시하고 쭉 달린다. 정류장에 누군가 내린 덕분에 버스안이 조용해졌다. 승객이 나 혼자였군.
대곶에서 택시를 타고 초지로 왔다. 초지에서 짐을 챙겨서 온수리로 왔다. 마침 온수리로 가려고 하던 주인집 아저씨 친구분이 태워주셨다. 벤츠를 탔다. 안전띠를 하니까 자동으로 지긋이 조였다가 살짝 풀어준다. 고장나면 계속 조이기만 하겠구나. 온수리에서 스파게티 재료를 구입하고 700번에 올라타서 강화터미널로 왔다. 터미널에서 생도너츠와 방진마스크를 샀다. 터미널 상가에서 승차 대기실로 가는 중간에 왼쪽 화살표 + 화장실 표지가 새로 생겼다. 어서 오십시오의 어서 위에 붙어있다. 그래서 화장실 오십시오가 됐다. 센스 있는 사람이 붙였군. 

31번을 타고 외포리에 왔다. 외포리 중국집에 들렀다. 이제 막 점심 피크 타임이 끝난 참이다. 짬뽕을 만든 요리사는 점심밥을 먹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짬뽕을 먹었다. 함께 바둑티비를 보면서 먹었다. 숙취가 가셨다.
외포리에 황사가 심하다. 내가 세상에서 싫어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황사다. 영동지방에 살지 않는한 평생을 함께 하겠구나. 얼마전에 영동지방에는 큰 눈이 내렸다. 하와이에서 살아야 할까. 하와이는 이름이 좋다. 하와이 하와이 하와이.하고 부르면 기분이 괜춘하다. 펀치드렁크 러브 아담 샌들러의 양복을 한 벌 사서 하와이에 놀러갈 궁리를 해본다.
여객터미널에 동네 어른들이 많다. js형 어머니가 나를 무척 반가워하셨다. 어제만 해도 인적이라곤 없는 산 속에서 살까.생각했었는데 동네분들 얼굴을 보니 올 한해도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멀리 볼음도에서 나오는 배가 보인다.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면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어 댈 포비를 생각해 본다.

배 기다리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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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후 할머니 화장터다. 할머니가 화장중이라는 모니터의 설명을 보면서 그 후손들이 소고기 국밥을 먹는다. 열세 개의 화장터에서 열세 구의 시체가 타고 유족들은 서울역 대합실 같은 장소에서 고인의 뼈를 기다린다. 몇 번 화장이 끝났습니다.란 기계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죽음은 이렇게 시장의 물건처럼 흔한데, 오늘 이곳에서 본 어느 여고생의 영정사진과 그 친구들은 내 마음을 울린다. - 나는 삐뚤개 안경을 쓴 채 웃고있는 소녀의 부모를 생각했다. - 죽음은 이렇듯 귀하기도 하다.

큰이모 돌아가셨던 때가 생각난다. 벌써 오년도 지난 일이다. 큰이모는 많은 조카들 중에 유독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또 많은 동생들 중에 우리 엄마를 가장 좋아했다. 자식 중에도 더 예쁜 녀석이 있고 엄마랑 아빠중에 더 좋아하는 쪽이 분명히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말로 케미가 좋았달까? 그랬던 큰이모였는데도 이모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게 미안하다. 큰이모 발인날의 하늘은 적도의 바다처럼 푸르렀다. 큰 이모의 인생이 암흑처럼 어두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큰이모가 그날의 하늘처럼 기분좋은 곳에 계시길 바라본다.

이런 자연스런 의미부여 속에 제사라는 풍습도 생긴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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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볼음도에 온지 365일째 되는 날이다. 그런데 지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고속버스 기다리고 있다. 섬생활 2년째를 여는 기념 밥을 장례식 장에서 먹게 됐다. 집에 있었으면 고구마 스물 두개 쪄 먹을랬더랬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온지 십년이 됐고 지금은 요양원을 나와서 강릉 삼촌집에 계시다. 지후 할머니도 치매인데, 오늘 돌아가셨다. 치매는 정말 무섭다. 초기에 발견해서 주뱐에서 많이 도와주면 증상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출수도 있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그러질 못했다. 치매는 고통이다. 에니 아르노의 작품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는데, 결국은 (감각적인) 고통이다. 어차피 고통이니까 감수성 넘치는 쪽이 더 좋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후는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죽겠다고 한다. 묘비명은 밝은 목소리로 "안녕? 얘들아!"로 정했다. 지후는 길가의 나무나 돌, 개나 고양이 물고기에게 항상 밝게 인사하기 때문이다. 나도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그냥 죽어야겠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줄만 연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달까? 내 묘비명은 차분한 말투로 "얘들아 안녕."으로 정했다. 지금 막 정했다.

어제 영일군이랑 술 마시다가 생각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봤을 때, 저 사람 참 평온해 보이는구나. 생각하는 얼굴을 갖고 싶다. 그러려면 근심 걱정 없이 살아야 하는데, 아무일도 하지 않아서 걱정 없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런 얼굴을 원한다. 물론 지금만 해도 몇년 전 보다 많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올해는 백합 조개를 많이 잡을거다. 같이 잡게 놀러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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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망고 15

사진 2014. 2. 9. 23:25

이망고님이 드디어 우리 텐트에 등정하셨다. 나랑은 반대로 하루하루성장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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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농, 살림을 디자인하다'를 오늘은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를 읽었다. 해는 길어졌지만 겨울은 길고 할일도 시간도 많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밖에 나가긴 싫으니 그동안 지후가 사둔 책들을 읽는다.

유기농이라 ......

유기농업은 무엇일까? 두 책 모두 소비자가 원하는 균일한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을 사랑하는 농부가 가진 삶의 태도와 실천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들어 낮에는 외국제 유기농 자재를 논밭에 잔뜩 투입하고 저녁에는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수입 체리 먹다가 잠드는 농부는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가 아니다. - 물론 생산물에는 유기농 인증을 받겠지만 -

그런면에서 나랑 지후는 꽤 잘하고 있다. - 물론 갈길은 멀고 멀고 멀다. - 원자력에 반대하는 의미로 전기도 무척 아껴쓰는 편이고 모든 논과밭을 유기농에 가깝게 일구었으며, - 작년에 고구마밭에는 독일제 화학비료를 넣었다. 논에 넣는 유박도 원재료가 외국제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 나는 옛날식 화장실에 똥오줌을 모으고 - 지후도 그러기로 함 - 올해는 빗물이용, 태양열 조리기 제작 등의 계획을 세웠다.

지금보다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더 줄여야 - 전기를 자체적으로 얻는다거나 나무를 때는 난방을 도입하고 조리도 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해야겠지. 근데 이와중에 아이폰 5s는 갖고 싶고 - 바깥 세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자급하는 옛날식 농부의 삶을 살 수 있겠다. 나는 유명한 유기농부들처럼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볼음도에는 아무런 일자리도 없지만 우리섬에는 백합조개가 있으니 조개 팔아서 시간을 벌 수 있다. 몸을 쓰는 일로 몸을 써서 생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섬 참 좋다.

그런데 나는 왜 유기농을 추구하는가? 농사가 체질에 맞아서 농부가 되기로 한것처럼 유기농도 그냥 그게 좋고 옳다고 생각해서 원한다. 거창한 철학이 있어도 좋고 언젠간 그런 게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좋고 만족하니 좋다.

ebs에서 했던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를 몇 편 보다보니 뭔가 쓰고 싶어져서 끄적거려 본다.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농사를 짓는 것이 체질에 맞는 대학생들이 많아져서 그네들도 다 농사 짓고 살면 좋겠다. 몇몇이라도 그런 결정을 하려면 우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경험 해봐야 하는데, - 일단 해봐야 자기 적성을 아니까 - 가장 좋은 방법은 방학 때 변산공동체 같은 곳에 머물렀던 학생들에게 학점을 (많이) 주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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