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볼음도에 온지 365일째 되는 날이다. 그런데 지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고속버스 기다리고 있다. 섬생활 2년째를 여는 기념 밥을 장례식 장에서 먹게 됐다. 집에 있었으면 고구마 스물 두개 쪄 먹을랬더랬다.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온지 십년이 됐고 지금은 요양원을 나와서 강릉 삼촌집에 계시다. 지후 할머니도 치매인데, 오늘 돌아가셨다. 치매는 정말 무섭다. 초기에 발견해서 주뱐에서 많이 도와주면 증상의 진행을 멈추거나 늦출수도 있다는데, 우리 할머니는 그러질 못했다. 치매는 고통이다. 에니 아르노의 작품은 그것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는데, 결국은 (감각적인) 고통이다. 어차피 고통이니까 감수성 넘치는 쪽이 더 좋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지후는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죽겠다고 한다. 묘비명은 밝은 목소리로 "안녕? 얘들아!"로 정했다. 지후는 길가의 나무나 돌, 개나 고양이 물고기에게 항상 밝게 인사하기 때문이다. 나도 병에 걸리면 곡기를 끊고 그냥 죽어야겠다. 병원은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줄만 연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편하게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달까? 내 묘비명은 차분한 말투로 "얘들아 안녕."으로 정했다. 지금 막 정했다.

어제 영일군이랑 술 마시다가 생각했다.

누군가 내 얼굴을 봤을 때, 저 사람 참 평온해 보이는구나. 생각하는 얼굴을 갖고 싶다. 그러려면 근심 걱정 없이 살아야 하는데, 아무일도 하지 않아서 걱정 없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런 얼굴을 원한다. 물론 지금만 해도 몇년 전 보다 많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올해는 백합 조개를 많이 잡을거다. 같이 잡게 놀러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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