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24/06/04 | 1 ARTICLE FOUND

  1. 2024.06.04 20240604 - 아버지 전입신고와 엄마 생각

 토요일에 서울가서 이혼하겠다는 친구랑 술 한 잔 했다. 모텔에 빈방이 없길래 밤 열 두시에 짐을 다 빼서 텅빈 아버지 집에 누웠다. 이불 없이 맨바닥에 잠들어서 그랬는지 약간의 한기를 느끼면서 새벽 4시에 깼다. 집을 나와서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첫 차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에 햄버거 세트를 먹는 남자가 인상적이었다. 첫 버스랑 첫 전철을 타고 엄마 집에 갔다. 술이 아직 덜 깼다. 엄마는 운동가려다가 거의 다 왔다는 나를 기다렸고 내 몰골을 보더니 씻고 좀 자라고 했다. 엄마 말을 잘 들어야지, 항상 생각하는 나는 바로 눕고 싶었지만 씻고 누웠다. 10시 30분에 잠에서 깼고 술에서도 깼다. 운동에서 돌아온 엄마가 같이 밥 먹자고 했다. 내가 올 것을 알았기에 김치찌개를 끓여뒀고 돼지고기도 양념에 재워뒀다. 고기를 약불에 볶고 싶었는데, 엄마가 강불에 볶으라 하기에 엄마 말대로 했다. 엄마랑 같이 먹으면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오랜만에 둘이 밥 같이 먹으니 좋다고 해서 나도 좋았다. 오후 다섯시에는 오산 전통시장 구경 갔다가 줄 서서 먹는 집에서 운 좋게 줄 안서고 칼국수 먹었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시간에 아다리가 잘 맞았다. 이런 작은 행운을 엄마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수맛은 평범했지만 엄마가 내 그릇에 면을 덜어준 순간이 좋았고 국물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엄마는 나에게 살을 좀 빼라고 하더니 밤에는 만 원짜리 옛날 통닭을 한 마리 시켜줬다. 그것도 잘 먹어야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열심히 먹었다. 이 이율배반이 사랑이다. 엄마랑 뭔가를 같이 먹는다는 행위가 이렇게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엄마랑 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내가 처음 듣는 얘기를 해줬다. 아버지가 공부는 잘했는데, 할아버지가 뭘 시키면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할아버지한테 많이 혼났다고 한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보부상도 하고 농사도 지었으니 이문에 밝았을 것이고 어느정도 손재주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전형적인 문과생 타입이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막걸리를 한 말씩(10리터겠지? 20리터 아니겠지?) 먹었다는 아버지 친구의 얘기도 전해들었다.

 어제는 평소에 안 먹는 아침을 엄마 앞이라 먹었다. 엄마 차 내가 운전해서 서울에 왔고, 엄마가 운전 차분하게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랑 올림픽대로를 탄 걸 기억해 둔다. 아버지 집주인과 며느리를 만나서 내가 준비해간 서류 주고 전세보증금 돌려받았다. 돈 3천 돌려받는 일이 이리도 번잡하고 힘들다. 내가 강릉에서 아버지 제적등본, 인감증명, 가족관계증명서, 부동산 거래 위임장을 챙겨갔다. 아버지랑 같이 주민센터가서 서류 떼는 일이 힘들었다. 주민센터 창구 앞 민원인 의자에 앉은 아버지가 똥을 지렸다, 자세하게 쓰고 싶진 않네.
 강릉 도착하자마자 엊그제 갔던 그 주민센터에 가서 아버지 요양원 전입신고 했다. 한숨 덜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 통장으로 들어온 전세 보증금 엄마한테 보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준비부터 결과까지 너무 짜증나고 힘들었다. 그래도 끝을 봤다. 현충일에는 또 아버지 만나러 가야지. 아버지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은 게 한 달 넘어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내가 누구냐' 고 묻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내 이름을 묻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서인가? 생각이 너무 나갔다.

 패닉 노래 중에 '정류장' 이라고 있는데 가사 속의 그대가 '엄마'다.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흐르고 자꾸 눈물이 흐르고 이대로 영원히 있을수만 있다면, 하는 그 노래를 요즘 많이 듣고 자주 울컥한다.
 
1박 2일 동안 엄마랑 보낸 시간과 45세에 엄마말 잘 듣는 아이가 된 일이 좋았단 일기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