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 2 학년을 안성에서 지냈다. 예술대 A, B동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와 한 학기 30만원 짜리 자취방, 그곳에서의 추억들이 있었기에 무척 행복했다.
대학 3, 4 학년은 대학로로 다녔다. 안성에 계속 있고 싶었던 아쉬움을 학교 바로 뒤에 있던 낙산공원이 달래주었다. 사실, 나를 즐겁게 해준 것은 낙산공원이 아니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길들을 헤치며 낙산공원 입구까지 오르던 순간들과 성벽에 올랐을 때, 보이는 사진속의 풍경들이었다. 술 사러 가서 종이컵은 없냐고 물으면 유리잔을 내주시면서 다 먹고 돌려달라고 하던 할머니가 운영하던 시골에나 있을법한 작은 구멍가게가 있고, 화려한 대학로를 반대편에 두고 마을버스 한 노선만 오고가는 언덕 위의 동네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낙산공원에 즐겨 올랐다.

오늘은 처음으로 대학로 쪽이 아니라 한성대 쪽에서 낙산공원에 올랐다. 정확한 사업명칭은 모르지만 아무튼 낙산공원을 좀 더 가꾸기 위한 사업 때문에 할머니의 구멍가게는 사라졌고 그 자리는 깔끔한 모습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사진속의 저 집은 아슬아슬하게 지역 개발의 구획에서 벗어났다.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집의 주인 아저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또 구멍가게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을지도 궁금하다.

나는 재개발 및 뉴타운과 관련해서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외관과 내부를 좀더 예쁘고 실용적으로 고쳐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쪽이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이 공원 바로 옆에 들어서지 않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내가 알던 풍경들이 사라지는 게 싫다. 그 싫음이 단순히 점점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고집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김훈이 '바다의 기별'에 실린 산문에 자기가 지금 사는 곳을 고향으로 만들지 못하면 어디에도 고향은 없다고 썼는데....
오늘 그 구절이 많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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