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랑 삼겹살 먹었다. 병원에서 피 뽑고 인지검사 받고 나오면서 아버지가 고기 먹고 싶다고 했고. 구워 먹어도 좋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 아버지 고기 구워 먹고 싶구나 - 작은 동네 식당. 남들은 김치찌개며, 제육, 백반을 먹는데 그 틈에서 삽겹살 4인분을 구워 먹었다. 술까지 마셨으면 배덕감의 정점에 닿았겠지만 냄새 풍기면서 고기 구운 일도 충분히 이질적이다. 고기를 익은 순서대로 아버지 앞에 놓아드렸다. 중간중간 '너도 먹어라' 하던 이버지가 더 못 먹겠다고 해서 불판 위의 고기랑 아버지 앞접시에 있던 고기까지 싹 먹어치웠다. 아내가 뭘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 예쁘고 날 기분 좋게 하는데 - 얼마전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배부르게 먹는 여성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 만화를 봤다. - 아버지랑 나는 서로가 배불리 먹는걸 보고 싶었나보다.

오늘 일정이 아침부터라 어젯밤에 서울 왔다. 모텔 욕조에 물 받아놓고 따끈하게 누워서 '근무지외 출장' 가듯 아버지 만나러 온다는 생각을 했다. 출장비가 안나오는 근무지외 출장. 참 냉정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버지를 만나면 그런 생각은 잊게 된다.

아버지가 농협 카드를 분실해서 재발급을 받는 건으로 며칠전에 농협직원과 통화했었다. 농협 직원 목소리 톤으로 뭔가 다툼이 있다는 걸 알고는 바로 저희 아버지가 치매라서 그런데...., 했더니 바로 그러셨나고...., 했다. 오늘 그 카드를 찾으러 가기전에 아버지가 주민등록증을 분실해서 재발급 받기 위해서 사진관에서 사진 찍었다. 동사무소에 제출한 한 장 빼고 나머지는 내가 챙겼다. 담에 동생 만나면 한 장 줘야겠다. 내가 아버지 근처에 살았으면 그냥 현금카드 만들고 말았을텐데, 기초연금 받는 치매 노인이 체크카드도 아니고 신용카드다. 은행 직원이야 카드가 실적이니까 잠깐 얘기하면서 이 노인네가 정상이 아닌걸 알았어도 그냥 진행했을거라 생각한다. 그런게 인생이지. 남의 인생이니까 이건 체념이 아니다. 다만 오늘 농협에서 카드 취소하고 현금카드로 진행하지 않은 내 모습은 체념이다.

아버지는 점점 더 멍하고 점점 더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한다. 그 뿐이다. 그 뿐인데 힘들다. 지난주에 천주교 수사 친구랑 술 먹다가 아버지 얘기가 나왔는데, 남들 물리적으로 함들게 하지 않고 곱게 치매가 온 것만으로도 아미 이 생에서 본인의 역할은 다 했기 때문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꽤 공감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거다.

나는 뭘 열심히 하지? 40대 중년 남자 인생에 남은 지분은 술과 운동뿐인줄 알았는데 아픈 아버지가 있었네. 아버지가 있었네, 라고 하면 엄마도 있지만 따지고 들지 않고 현재 내 삶에서 차지하는 몫(포션)이 그렇단 얘기다.

아버지가 2층 계단을 내려와서 배웅해줬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도 점점 약해진다.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어색하다. 버스에서 내릴 때 먼저 내린 내가 손을 내밀자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내렸다. 내가 그림같이 생생하게 저장한 몇 시간 전의 일을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니까 상관 없다. 아버지 증명사진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주 화요일날 병원에 가야해서 또 온다는 얘기를 스무 번 이상했다. 아버지는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내게 미안해하면서도 좋아하기를 스무 번 이상 했다. 그걸로 됐다.

방금전 청량리 역에서 카페모카를 먹고 싶었는데 말이 헛나와서 카페라떼 먹었다. 얼마전에는 상갓집 가는길에 ATM에서 돈을 찾았는데, 카드만 챙기고 돈은 그대로 두고 왔다.

대내외적으로 어지러운 시절이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