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늘 그렇듯 회사에선 별일 없었다. 집에 와서 아내랑 같이 운동을 했다. 10시 반에 일을 마치는 친구차 얻어타고 친구네 동네 가서 한 잔 했다. 그 친구랑 마시다가 취하면 항상 전화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 취할 때마다 전화하는 일도 웃겨서….. - 집에 돌아와서도 문자를 주고받는 와중에 친구가 나 20살 때 사진을 보내줬다. 50살 가까워지는 지금도 내 모습을 바깥에서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헬쓰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내가 보는 것이 내 모습이 아니란 생각이다. 어린날의 나를 바깥의 시선으로 들여다 봤던 친구가 사진까지 보내주는 일이 좋다. 몇달전에 건쓰짱이 육군 훈련소 때 사진을 보내줘서 21살의 나를 볼 기회가 있었다. 친구야 thanks.

어제랑 오늘은 집에 가만히 있었다. 누워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패드에서는 음악, 뉴스, 드라마 하이라이트, 역사가 흘러 나오고 폰으로는 만화를 봤다. 확실히 sns 끊고 나서 만화를 열심히 본다. 아내가 가수 ‘이승윤’ 덕질하듯이 나도 집중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그게 만화다. 만화는 책장을 넘기든 크스롤을 내리든 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소비하는 쪽이 적극적이어야하는 매체다. 만화 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 문학도 마찬가지고 - 아무리 세상이 하이테크로 향해도 스스로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인간 본능의 일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이세계’물의 범람이 달갑지 않았는데, 이세계 물도 재미있게 본다. 그렇게 아저씨가 됐다.

친구랑 마시다가 취해서 아버지 얘기를 격하게 했다. 그 격함이 남아 있어서 집에 와서 바로 시를 썼다. 다음날 읽어보니 별로였다. 아버지가 내 한 구석에 있는 동안은 -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 계속 반복될 일이다. 나는 왜 점점 안 좋아지는 아버지를 기록하나? 나는 왜 아침마다 아버지랑 통화를 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수시로 전화 하나? 나는 왜 엄마랑 통화할 때도 아버지 얘기를 주로하나? 엄마한테 미안하다.

아버지 일과 기후 우울증으로 - 내 전반적인 우울은 기후 우울인 거 같다. - 가만히 누워 있었다. 몇 시간 후면 출근해야 하는데, 이제 일어나서 일기를 쓴다. 뭣한다고 일기를 쓰나. 주로 누워있었지만 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울때는 누워있지는 않았다. 우울 때문에 밥을 많이 먹었다. 빨래, 방청소, 음식물쓰레기 정리, 취사 같은 생활도 짧은 시간 있었다. 결국은 주로 누워 있었다. 요즘은 기타도 누워서 친다. 누워 있지 않은 시간 중에 아내가 “우리는 근근이 살아야 된다.”고 했다. 공감한다. “집만 있으면 괜찮게 근근이 살수 있다.”고 했다. 공감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가수 박정운이 죽었다. 영국 여왕이 죽은 것보다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 잠들기 전에 5집에 실린 '목동에서'(죽은 옛 연인이 살던 동네에 오랜만에 방문해서 연인의 어머니를 만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 엘리자베쓰 여왕이 유난히 오래 살긴 했지만 모든 인생에는 등락고저가 있다. - 박정운이 코인 사기로 실형을 받은 걸 그가 죽고 나서 알았다. - 두 사람도 근근이 산다는 생각을 했을까?

다시 누워야겠다. 하루하루 그냥 산다. 많은 사람들이 근근이 살고, 근근이 사는 건 아버지나 나나 같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