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하나씩/먹다 | 94 ARTICLE FOUND

  1. 2016.04.20 20160420 - 어쩌다 하나씩
  2. 2016.02.22 20160222 - 어쩌다 하나씩
  3. 2016.01.06 20160106 - 어쩌다 하나씩
  4. 2015.07.11 20150711 - 어쩌다 하나씩

삶은 달걀을 먹다

속내를 알기 어려운 내가
속을 알기 쉬운 너를 먹는다
샛노랗게 질린 너에게 미안하다

AND

소고기 미역국을 먹다

아내의 퇴근을 기다리며
미역국을 끓인다
자식 키워 봐야 소용 없다고
명절에 엄마가 아들 먹으라고 싸 준 양짓살을
겉만 익혀서 한 입 크기로 자른다
내 각시 먹이려고 자른다
도마와 칼에 저미는 핏물
이 고기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생명으로 국을 끓여서
생명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유없는 우리사이처럼
미역국엔 이유불문 참기름이다
고기와 통마늘을 볶는다
마늘 다지는 게 귀찮았다
당신이 귀찮은 것은 아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마늘을 많이 넣는다
불려둔 미역을 넣고 계속 볶는다
물만 닿으면 다시 살아나는 미역이
당신만 보면 활기찬 내 마음 같다
간장으로 간을 하고 
물을 붙고 팔팔 끓인다
한 번 끓으면 불을 줄이고
살살 끓이며 간을 봐야 하는데
간 보기가 귀찮다
당신이 귀찮은 것은 아니다
매일 태어나는 우리 사랑을 축하하려고
오늘 저녁엔 미역국을 먹는다
AND

양꼬치를 먹다 - 가리봉 양꼬치 -


중국 사람이건 한국 사람이건
후줄근한 사람이 후줄근하긴 세계 공통이다
북쪽 대륙 사람의 얼굴에
추위와 피로를 잔뜩 묻힌 사내가
퇴근 시간도 전에 혼자 앉아서
양꼬치를 씹는다
밤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르듯이
한 점 한 점 양념을 발라서
한 점 한 점 정성스럽게
쇠막대기에서 뽑아 먹는다
술도 한 잔 없이
양꼬치 1인분을 먹고
후줄근한 만 원 짜리 한 장을
테이블 위에 딱 소리 나게 올려 놓고는
가게를 나간다

어디 잘 곳은 있습니까?
조선말로 묻지 못하였다

사내가 나간 자리를 또 다른 사내가 채운다
출입문 앞자리는 혼자 앉아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자리
이번에도 북쪽 대륙의 얼굴이다
스물 다섯이나 되었을까
말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다
미리 시켜 놨을까
자리에 앉자 마자 물만두가 나온다
만두 한 개 한 개를 간장 그릇에 담그고
만두피 전체에 간장을 듬뿍 발라서
빠른 속도로 먹어 나간다
혼자 먹는 저녁은 종교와 같은 것
젠틀하게 사장에게 오천원을 건네곤
이제 막 불을 밝히는 거리 속으로 사라진다

저기요, 물만두도 한 접시 주세요
혼자 양꼬치를 먹던 나는
중국인 사장에게 수줍게 조선말을 했다


AND

복숭아를 먹다

엄마 생각이 나면
바닷가에 가서 복숭아를 먹는다
복숭아 태몽을 꾼 엄마
물놀이를 마친 내게 복숭아를 건넸던 엄마
크게 한 입 깨물면 물큰 흐르는 과즙이 엄마 젖인 것 같다
사슴벌레가 복숭아 먹듯
나는 엄마를 먹고 자랐다
벌레 먹은 복숭아가 못쓰게 되듯이
엄마는 병들었다
복숭아는 흐르는 과일
흐르는 것은 눈물
엄마가 흘러간 삶을 따라 눈물이 흐른다
먼 데 있는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자꾸 생각나는 엄마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