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ine - 내일이면 새 직장에서 한달이다. 벽지 만드는 일에 많이 익숙해졌다. 아직 신입이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거들 뿐.

 6시 반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하고 - 옷을 주워입는 것이 전부지만 -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가서 아침을 먹고 조회를 하고 체조를 하고 일을 하다가 11시가 되면 배가 고프고 11시 30분에는 점심을 먹고 두 시 정도되면 목이 마르다. 그때 빵과 음료수를 먹고 - 음료수부터 마시고 빵은 좀 있다가 먹는다. - 다섯 시 정도엔 또 배가 고프고 다섯 시 반엔 저녁을 먹고 여덟시가 넘으면 퇴근이다. 집에 오면 씻고, 기타를 치고, 음악을 다운 받고 이것저것 읽다가 잠든다.

 금요일엔 지후가 와서 맛있는 걸 해주고, 이런저런 것들을 하면서 놀고, 일요일엔 지후를 배웅하고 그러고 나면 섭섭하고 하지만 다음 금요일엔 지후가 또 와서 맛있는 걸 또 해준다.

 

 지후랑 - 지난 토요일 새벽에 주인아저씨네 고추를 땄다. 첫물이고 밭 사이즈도 적어서 금방 끝났다. 주인아줌마가 꽃게탕을 선물로 줬다. 지후가 무척 좋아했다. 기뻤다. 토요일 밤에는 지후랑 배트민턴을 쳤다. 지후는 금방 지쳤지만 무척 좋아했다. 기뻤다. 나머지 시간들은 먹고 자고 만화책 보고 게임하고의 무한반복이었다. 중간에 기타 줄을 갈았다. 지후는 호두스콘과 단호박 떡과 오이김치와 감자조림을 만들었다. 다 맛있었다. 나를 기쁘게 하고 맛있는 걸 만들어 주는 내 아내 최고다.

 

 그랬는데, 오늘 - 내가 일하는 기계는 실크 1호기인데, 바로 옆에 2호기를 총괄하시는 분이 갑자기 쓰러지셨다. 황급히 사무실로 뛰어가서 119에 전화하라고 했는데, 구급차가 너무도 늦게 왔다. 의식은 있으셨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걱정이 많이 됐지만 다들 계속 기계를 돌렸고 점심을 먹었다. 식구가 운명을 달리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다행히 쓰러지셨던 분은 오후에 방긋 웃으면서 나오셨다가 오늘부터 휴가라면서 다시 돌아가셨다. 다행이다. 밥을 먹은 마음의 짐을 덜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이제 내 말이 됐다. 내가 그런 나이가 됐다. 건강이 최고다. 구체적으로는 몸이 조금 안 좋으면 직장은 하루 쉬는 것이 좋다. 안그랬다가는 괜히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다. 여기서 일하는 동안은  항상 다치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그렇지만 사고는 불연듯 오는 법인데.....

 

 오늘 그랬는데 - 오후에는 계속 주말에 갈았던 기타줄이 생각났다. 석연찮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가면 무슨일이 있어도 다시 갈아놓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했다. 그랬는데, 18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Yeah! - 그렇지만 급료는 줄어드는 것인가? ㅡ.ㅡ;

 집에와서 기타줄을 갈았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말끔한 편이다. 안심이다. 오늘 푹 잘 수 있겠다. 사실은 어젯밤부터 기타줄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강박증과 결벽증이 결합한 증세다. 결박증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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