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동갑인 큰 고모 아들내미가 지난달에 결혼을 했다. 강릉사는 친척들이 제법 왔었다. 강릉에서 이발소를 하시는 작은 고모부한테 잠깐 붙잡혀서 여러 얘기를 들었다. 결론은 얼른 장가 가라.였다.

할머니 생일에 맞춰 강릉에 다녀왔다. 서군과 마시고 작은 고모네 갔다가 혼자 술 드시고 계시던 고모부한테  붙잡혀서 여러 얘기를 들었다. 결론은 빨리 장가 가라와 농사 지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라.였다. 늦은 시간이어서 다들 자고 있었지만 고모부와 내 대화를 들은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다음날 아침, 고모집 마당에서 막내 삼촌에게 잠깐 얘기를 들었다.
결론은 추진력 있게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올해 마흔살인 막내 삼촌은 상고의 마지막 세대에 상고를 나와서 안정의 전형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앞으로 10년 후면 직장생활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버지 형제들이 모두 전형에 가까운 삶을 추구하고 있으니 나는 꼭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아마 전날 밤에 잠들었다가 깨서 눈을 감고 고모부와 내 대화를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하는 얘기에 강단있게 나설 필요는 없다. 나는 어른들 얘기를 굉장히 잘 듣는 편이다. 그리고 실제로 존경을 담아서 들을 때도 있다.

<술자리에서 욕망들을 쏟아낸다.
욕망들은 부서지기 위해서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부서진 욕망들은 민폐가 된다.

부끄럽다는 얘기를 하기도 부끄러운 시간들이 지나고
누군가가 차려준 밥상을 앞에 두고
밥알의 단내를 씹으며 해장을 한다.>

작은 고모가 아침밥을 차려주시면서 그렇게 마시고도 괜찮냐고, 역시 젊음이 좋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 때문이 아니라 아침상 때문에 마음이 흐물거렸다.
그러니까 내 흐물거리는 마음은 서울에서 내려온 큰 조카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밥을 차려준 고모의 마음이 고마웠다는 것이다. 작년의 언젠가 고모는 서울에서 살기가 그렇게 싫으면 고모가 강릉에서 직장 좀 알아봐 줄까?라고 한 적도 있었다. 딱딱한 멘트 같지만 강원도 사투리도 들으니 참 느낌이 좋았었다.

서군네 애가 많이 이뻤다.
사라마구는 죽었고
오늘 오전에는 배가 고파서 밥을 했고, 밥솥에서는 뻐꾸기가 울었지만
밥을 먹지 않고 시리얼을 먹었다.
자꾸만 위화감(실제로 위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분 나쁜 것이 관통하고 있는 느낌?)이 몰려들어서 엘리엇 스미스 노래를 부르다가 혼자서 술을 마셨다.

금방 좋아지겠지만 그것이 오늘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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