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종일 우울했다. 전화기 너머의 지후에게 징징댔더니 나를 생각해주는 여러가지 조치들을(일례로 네이트온에 접속해주었다.) 취해주었다. 밤에는 고구미군에게 징징대면서 제법 마셨다. 칭얼대는 것과 징징대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면서 계속 징징댔다. 기억을 잃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따듯한 이성준의 집이었다. 그의 출근시간에 맞춰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열쇠를 맡기기 싫어하는 그의 마음을 무시하고 더 잤다. 천천히 일어나서 담배를 꺼내물고(잔뜩 마신 다음날 술이 덜깬 상태에서 피워무는 첫담배는 기분이 좋다.)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가방이 없었다. 이성준에게 마지막 가게를 물었더니 니 가방 화섭이가 가져갔잖아 이놈아. 했다. 그래서 안심하고 언제 올거냐고 문자 보냈다.

술이 덜깬 상태로 출근해서 해장으로 학생식당에서 돈까스 비슷한 무엇과 라면을 먹었다. 어제는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단지 마셨을 뿐인데, 술이란건 그런걸까? 영일군 부인께서 영일군 알콜 중독 초기라고 했다는데(몸 쓰는 일을 하면 술이 땡기긴 하지.. 부인께서는 그 부분을 잘 이해 못하시는 것 같다.), 사실 영일군은 술을 자주도 많이도 안 마시는 편이다. 잔뜩 마시고 기분 좋아진 나야말로 알콜 중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좋아서 언덕더미 정도로는 쌓여있는 일들은 내년에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분이 더 좋아졌다.  

고구미군에게 다 와간다고 전화가 왔다. 반가웠다. 크게 실수한 게 없다는 얘기도 반가웠다. 같이 학생식당에 갔다. 밥을 먹는 그를 찍었다. 모처럼 25미리가 위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변과 관련된 자잘한 대화들을 나누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한 얘기들은 서로의 기운을 통해 오고갔다. ECC에 가서 흡연 금지 구역인 ECC 밸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마침 따끈하게 햇살이 내렸다. 함께 담배를 피우는 건 두 사람이 내뿜는 연기가 섞이는 것처럼 서로 심정적으로 섞이는 일이다. 

어쩌다 보니 담배 예찬 글이 되버렸는데, 야외 흡연이 불법이 되더라도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어떤 조치는 취하고 진행됐으면 좋겠다.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함께 담배를 물고 바다를 바라보는 두 남자를 상상해 본다.    

고구미와 이성준 두 사람 모두 고맙다. 놀기로 한 김에 기타 연습이나 실컷 해야겠다.
그래도 지후가 제일 고맙다.

올해가 간다.

<돌솥밥 2700원 - 올해의 베스트 샷, 고구미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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