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비루한 것은 약간 너절하고 그런 느낌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내 사용은 비참하고 남루한 것을 합친 것이다.
어젯밤에 옆에 누워서 잠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후에게 한 숨을 쉬면서 사는게 참 비루하다고 했더니 그런 생각하면 우울해지니까 생각 안한다고 했다. 정작 그 생각으로 더 우울해 지는 쪽은 지후 쪽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는 지후가 가족 휴가를 간 관계로 그새를 못 참고 또 고구미군에게 전화를 해서 술을 마셨다. 모처럼 상민이 형도 봤고.... 그럭저럭 즐거운 자리였는데, 다들 현실에 대한 불만을 어쩌지 못해서 초조한듯한 느낌이었다. 어쨋든 직업이 있는 상민이 형과 나는 그래도 조금 괜찮은 것 같았지만 아티스트의 길을 선택한 고구미군과 영화에 대한 꿈을 못 버리고 있는 이성준 군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고구미군이 큰 목소리로 화내면서 통화하는 것을 봐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성준 군은 11년 전부터 늘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

 누구는 이혼을 하고 누구는 새 연출부 자리를 잡고, 누구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아이템을 찾고, 누구는 일거리를 찾고 누구는 일을 그만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누구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시간들과 함께~~~~~

 예전에 마시면서 첫 건배를 위해 종종했던 말이 '아는 사람들끼리라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는데, 세상에 대한 체념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못난 말이다.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못 할 바에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나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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