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만났고 서울 올라온 김에 친구 만나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영등포(양평동) 오랜만이다. 친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싶다는 꿈을 이뤘고 이혼을 했다. 나는? 45세의 가을, 금요일 밤에 만날 친구가 있다는 건 괜찮은 인생의 방증인지도 모른다.

지난주 벌초하면서 봤을 때 눈치챘지만 아버지는 더 나빠졌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버지, 하고 큰 소리로 불러서 주위를 환기 시키고 어떤 얘길 해도 끝까지 듣지 않고 다른 얘길 한다. 바깥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금방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알아듣는 척 한다. 오늘 이대 목동병원은 다음달에 간단 말을 20번 정도 했다. 오늘 데이케어센터 가는 날 아니고 2시간 후에 날 만날거라고 8시에 통화했는데, 9시에 센터에서 어르신 나왔다고 전화왔다. 센터 선생님들이 보기에도 아버지가 처음보다는 좋지 않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센터 안에서는 가장 밝고 적극적인 사람이라지만 그것과 치매 증상은 별개다. 담주에 장기요양등급 변경 신청을 해보려고 한다. 5등급 못 받으면 자부담이 들더라도 최대한 데이케어센터를 많이 이용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동생과 나만 부담한 센터 이용료를 엄마까지 부담하게 되겠지. 일단, 센터 나가는 날은 저녁식사도 하고 집에 오시는 걸로 변경했다. 센터쪽도 입장이 있어서 한달을 풀로 이용하는 입소자가 있는 쪽이 좋을 것이다. 입소자를 제소자라 쓸뻔했다.

오늘은 집근처 병원에서 혈압약을 탔고 - 혈압약 함부로 끊으면 안된다고 의사한테 한 소리 들었다. 내 불찰이다. -, 은행 두 곳에서 통장 정리했고 핸드폰대리점에 들러서 요금제 등을 확인했다. 점심은. 오리 먹을까 하다가 염소탕을 먹었다. 아버지는 오늘도 특이었다.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아버지는 특으로 할까 싶네. 아버지는 고기 찍어먹으라고 장이랑 기름이랑 식초 들깻가루 섞어 만들어 준 양념을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탕에 때려 넣어버렸다. 바깥 소리를 안 들어서 그렇다. 아버지는 오늘도 나에게 수고했다고 했고 이별할 때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 아버지, 금방 또 만날거니까요.
- 사람들이 뭔가 큰 목소리로 얘기하더라도 아버지한테 화 내는게 아니니까 아버지도 흥분해서 화낼 필요 없어요.

엊그제 사무실에 유기견 한마리가 알랑거려서 잡아 묶어서 물이랑 생컵라면 주고 강릉시동물사랑센터에 신고했다. 신고하고 두 시간만에 거기 직원이 와서 기계적으로 개를 데려갔다. 그 개인은 주인이 버린건지 주인을 잃어버린건지. 사람을 보니까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사람이 눈 앞에 안 보이면 컹컹 짖었다. 그 개를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연결해서 생각해도 되나, 나도 아버지에게 너무 기계적인가, 자책감 들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오늘 청량리역에 두고 내린 전화기를 서울역에서 찾는 바람에 서울역에서 신월동 올 때는 버스를 탔다. 20대 때 참 많이 다니던 노선. 신촌 홍대 양화대교 강서구청 화곡역 라인이다. 시내버스 맨 뒷자리에 앉으니 자리가 높은만큼 풍경이 -시선의 기준점- 약간 올라가 있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나?

오늘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앞으론 더 많을거고 꼭 아버지 때문은 아니지만 어지러운 하루다.

모레까지 서울에 있으니 오늘은 친구랑 잘 놀고 내일도 아버지 집에 가서 서프라이즈 점심밥 먹어야겠다. 지금 마음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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