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뇌동맥류 시술이 잘 끝났다. 결전을 앞두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웃었다. 아버지는 변동없다. 학교에 간다고 하면서 한달에 12번 데이케어센터에 간다.

a형 아버지랑 s씨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문은 가지 않고 조의금만 했다. a형 어머니는 최근에 치매로 확정됐고 s씨 어머니도 치매였다고 한다. 치매. 치매. 치매. 환절기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여름이 시작될 때 찾아오는 노인들의 죽음.

함께 살지 않더라도 피로 이어진 누군가가 죽는 건 큰일이다. 아버지랑 추억이랄 게 별로 없는 나도 아버지 치매 확정되고 나니까 옛일 생각이 많이나고 - 유일하게 아버지한테 맞았던 날 같은 거 -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까, 아버지 돌아가시면 함께했던 게 더 많이 떠오를거다. 아버지 만난 날을 기록해두고 있으니까 더 그렇다.

아버지는 최근에.
싱크대 배관을 건드렸다가 망가뜨렸다. 왜 건드렸는지는 모른다. - 믈이 잘 안된다고 해서 싱크대에 물이 샌다는 걸 알기까지 5분 통화했다. - 전기밥솥 밥이 안된다고 고장났다고 했는데 고장난 게 아니었다. 왜 안된다고 했는지 모른다. 밥솥뚜껑을 끝까지 잠그지 않아서 취사 버튼이 안 눌렸다고 추측해본다. 에어컨이 돌아가는데 실내온도는 30도인 채로 잠을 잤다. - 두 번 그랬다. - 에어컨 리모콘을 왜 건드렸는지 모른다. 그냥 이버튼저버튼 눌렀으리라 추측만 해본다. 데이케어센터에 가지 않는날 아버지는 심심하다. 센터에 가는 날이라도 돌아와 혼자인 시간이 오면 아버지는 심심하다. 아버지는 심심하다.

둘째 이모는 아버지 살피는 일에 지쳤다. 아버지는 엄마에게도 이모에게도 화를 낸다고 한다. 본인이 한 일을 본인이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이모나 엄마가 아버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건 아버지의 상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인가? 내가 아버지에게 덤덤한 것은 아버지에게 기대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닌가? 거의 모든 말을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사랑이 중요한가? 지금 아버지의 삶을 생활이라 할 수 있나?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게 잘 안되면 돈이 많이 들더라도 데이케어센터에 매일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근데 돈이 없네.

엄마 수술할 때 엄마 옆에 없었고 지금 어느정도 회복이 됐기 때문에 아내랑 엄마한테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 엄마를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런 마음 가질 필요 없는데.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보편적인 정서인가? 배우자의 부모님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님이 엄마 수술한다고 돈 30만 원 보낸것도 그런 종류의 보편 정서란 생각이다. 그 돈을 엄마 보살펴 준 막내이모 드렸다. 엄마가 고맙다고 했다. 막내이모는 내 마음이 고맙다며 또 울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주의인가? 마음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형편이 문제다.

이렇게 고도화된 자본의 세계에서 무한리필 고깃집에 가지 않고 셀프주유를 싫어하는 - 고기 얼마나 더 먹는다고. 구워주는 집에서 더 시켜 먹으면 되지. 자동차 기름까지 내 손으로 넣어야 하나? - 내 안의 자본주의가 형편이란 단어로 나를 무겁게 한다. 복권은 맞지 않는다. 아내가 집 갖고 싶어하고 친구들 중에 거의 나만 집이 없다. - 나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 자동차를 바꿔야 한다. 집은 글렀고 차를 바꿀 형편은 되지만 새 차 갖고 싶다고 집 갖고 싶어하는 아내한테 말 못하겠다.

얼마전 책모임에서 김수영 시를 읽었는데. 생활 형편 여유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많이 박혔다.

지구는 더워도 나는 살았으니 일단은 살자. 걱정이 있어도 살자.

-> 돈 보내고 이모랑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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