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딜라이트란 이름이 붙은 커피를 처음 마셨는데 인생은 그리 밝지 않다.

머릿속 혈관이 꽈리 모양으로 부풀었다는 엄마 때문에 인디아나존스 영화에 나왔던 원숭이 머리 요리처럼 머리 위쪽이 잘린 대형 조형물이 손을 내밀고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동생과 함께 왔다. 보호자는 한 명만 출입 가능한 관계로 엄마랑 동생을 들여보내고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엄마 병명은 대뇌동맥류, 얼마전 강수연 배우를 죽음으로 몰고간 그 병이다. 대뇌동맥류와 관련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수술, 부작용, 죽은, 장애. 그런것들.

지난 몇 주간, 세상은 망해도 지금은 열심히 즐기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먹고 맛있는 걸 먹고 또 친구들을 만나고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새 기타를 사고 단오제 구경을 한 게 다 바보같다. 안네프랑크며 6.25전쟁 때 피난가던 사람들은 다 뭔 소용인가. - 언제부턴가 맛있는 걸 먹을 때 안네프랑크 생각을 많이 한다. 맛있지 않아도 뭔가를 먹을때면 - 어제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았고 저녁엔 아내가 보자고 해서 시릴디옹이 만든 영화 ‘animal’을 봤다. 그건 또 무슨 소용인가.

얼마전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뭔가를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일을 오랜만에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프단 얘기를 듣고 나서 계속 소설 속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 목숨이 쇠심술 같아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 셋째 이모는 엄마 소식을 듣고 실제로 밥을 못 먹는다고 한다. 사랑인가? 둘째 이모는 그냥 계속 울고 막내 이모는 큰언니(큰이모)가 엄마 나이에 죽었다며 운다. 이모들 없었으면 우리 엄마 어떻게 살았겠나. 고맙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교수도 아니고 레지던트가 지금 당장 터지진 않고 터지기 전엔 징후가 있으니 예약해둔 화요일에 와서 외래진료 보면 된다고 한 얘기에 이모들이 안심했다. 대형병원의 권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6시에 강릉 출발 20시 40분 강릉 도착했다. 당일치기 운전 힘들다. 원주에서 일보고 돌아오는 아내에게선 밥 좀 안쳐주면 고맙겠다고 톡이 왔다. 그게 뭔 대수겠나.

수술까지 다 잘되서
몇 년 후에는 이모들이랑 둘러앉아서 엄마 아프다해서 다들 울었던 얘기하면서 웃는 일로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내 마음은 소변기마다 주변 바닥에 오줌이 막 튀어있는 연휴 첫날의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화장실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자다가 가위 눌렸는데, 목이 잘린 기타를 들고 사라진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수원 아주대병원에는 단풍나무가 많고 이 동상 제목은 ‘어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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