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바퀴벌레를 세 마리 죽였는데, 그 중에 두 마리가 어제였다. 세 마리 모두 예전부터 미국 바퀴벌레라고 부르던 대략 성인 엄지손가락 크기의 대형 바퀴벌레다. 미국은 큰 나라 큰 바퀴는 미국바퀴, 이렇게 쉽게 이름 지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런 경향들이 남아 있다. 크기에 압도되는 경우에 미국 카페, 미국 헬쓰클럽, 미국 사람 같다거나 하는 일이 그렇다.

내 유년시절인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는 집에 바퀴벌레가 많았다. 우리집만 많았던 건 아니고 집집마다 많았다. 그때는 무좀도 많았다. 류마티스 관절염도 많았다. 무좀약, 관절염약, 바퀴약 모두 종류도 많고 TV 광고도 많았다. 집에 바퀴가 출몰하면 처음에는 때려잡다가 숫자가 많아지면 끈끈이를 이용했다. 집 구석구석 바퀴가 좋아할만한 곳에 끈끈이를 설치한다. 일단 설치했으면 바퀴가 얼마나 잡혔나 수시로 관찰하게 된다. 끈끈이랑 관련해서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알을 달고 다니던 바퀴가 끈끈이에 잡혔는데, 알이 부화하는 바람에 몇 백마리 바퀴애벌레(?)가 알을 깨고 기어나오면서 그대로 끈끈이에 붙어 죽어 죽음의 하얀 산을 만들었다. 엄마가 이리 와보라 해서 그 광경을 엄마랑 같이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악취미다. 탄생과 함께 죽는일을 생각해본다. 어느시점부터 집안에서 바퀴벌레 보는 일이 거의 없다. 90년대 후반에는 바퀴 잡으면 뒤집어서 태워죽이는 악취미를 가진적이 있으니 2000년대 들어서 바퀴벌레를 대면하는 일이 줄었다. 바퀴 약이 점점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간 생활권의 바퀴 숫자는 줄었겠지만 핵전쟁이 나도 멸망하지 않는 동물이 바퀴니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생각했는데, 우리집에 바퀴벌레가 있다. 그것도 미국바퀴가. 작년부터.

우리집엔 아내가 식물 키우고 내가 올해 고추 한 포기를 심은 야외 베란다가 있다. 거길 가려면 세탁기랑 가스보일러가 놓여있는 공간을 - 아파트로 치면 다용도실인가? - 지나가야 하는데, 그 공간에 미국바퀴가 있다. 작년에는 스무마리 이상 잡았다. 그러고나서 안 보이길래 다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올해 또 등장했다. 밤에 담배 피우러 나가려고 다용도실 불을 키면 미국 바퀴가 있다. 갑자기 불이 켜져서 얼어붙어 있다. 나도 같이 얼어붙었다가 얼른 쓰레빠를 신고 밟아 죽인다. 좀 더 오래 얼어붙어 있는 쪽이 당한다. 생명을 없애는 일이 기분 좋지는 않은데, 본능적으로 짓밟게 된다. 야외 베란다랑 왔다갔다 하며 사는 애들이니 그냥둘까? 하는 생각을 이 글을 적으면서 한다. 그래 그냥 두자. 어제 바퀴벌레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인간 세상이 끝나가는데, 세상이 끝나도 살아남을 바퀴를 내가 죽여서 뭐하겠나, 란 맥락으로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어제가 아니다. 바퀴벌레를 살려두자는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바퀴벌레에 대한 작품은 테라포마스가 떠오르는데 만화도 애니도 영화도 다 끝까지 보진 않았다. 화성에 정착한 바퀴에게 인간이 당하는 스토리다. C8 당해도 싸다. 초거대화된 바퀴에게 내가 밟혀죽는 상상을 해본다.

-> 바퀴랑 별개로 2022년 5월 26일, 올해 가장 쨍했던 날을 이 짤로 기억해둔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