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잠을 자다

청량리에서 강릉오는 한 시간 반 동안 잠깐 졸았다
선잠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도 기차안에선 졸게 된다
어린날 청량리에서 무궁화 기차를 타고 외할머니 살던 경북 영주에 갈 때도 열차 안에서 졸았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선잠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한때는 내게도 이 예쁜 말이 어울리는 시절이 있었다
선잠은 서서자는 잠인지 잠깐자는 잠인지 아니면 잠깐 서서 자는 잠인지
선잠이란 말을 아는 내가 옛날 사람은 아닌지
열차가 잠깐 멈췄을때 아버지랑 외삼촌들이 먹던 가락국수가 제천역이는지 안동역이었는지
어린 내게 호의로만 가득했던 시절
잠깐의 꿈 속에는 은밀한 비밀조차 없었는데
아버지랑 병원 들렀다 돌아오는 길의 선잠 안에는
깨고 나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이름과 그때의 사랑, 세상에 나만 아는 비밀이
열차 한 칸을 가득 채운다
잊기만 하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우락부착한 중년 남자의 생활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졸았다
아버지는 당신의 꿈 속에 살고
나는 지금 그 꿈 속에서 온 삶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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