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가끔
내가 거인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유라시아 대륙만한 담배 한 개피 손에 들고
내뿜는 연기 한 번이나 가벼운 손길 한 번에 인류같은 것 쓸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거인이라면 
붉은 달을 궤도에서 뽑아내
태양을 향해 던져서 녹여버리거나
태양을 정권으로 내리쳐 화상을 입고 
다친 손을 바로 목성의 바다에 담그고
화가 덜 풀려서 내지른 소리가 태양계 전체에 울리고
모든 생명들이 두려워 덜덜 떨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거인이 아니므로
오늘도 알량한 생각이나 하면서 모서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진짜 거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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