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마신 술이 덜 깬 날은. 아침부터, 그냥 평범한 뉴스를 보다가도, 아무 노래나 들어도 울컥울컥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쉽게 센치해지는 성격을 알기에 너무 감정에 휩싸이진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타고난 성정에 나이까지 더해졌기에 엔간하면 그렇게 되고만다.
김포 가서 친구 보고 왔다. 이혼 소송 방어 중인 내 친구. 올 3월에 18살 아들 뺨을 때렸다는 내 친구. 누가 봐도 끝난 결혼을 붙잡고 싶은, 절반쯤 폐인이 된 내 친구. 친구에게 처음 건넨말이 겨우, 많이 힘들어? 였다. 안 힘들겠냔 대답이 돌아왔고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하기에 서로 얘기 없이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우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식당에 앉아서 둘이 같이 엉엉 울어버렸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무슨 소용인지. 여자랑 아이는 왜 집을 안 나가는지. 애엄마랑 아이가 내 친구 골을 빼 먹는 기분이다. 왜 내 친구가 이런 꼴을 당해야되나 울화가 치밀었다.
집 세탁실에서 전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친구 s에게 전화가 왔다. 첫 마디가 나 취했다,였다. 울었던 목소리다. 술 취한 밤 열 한 시 반에 내 생각이 났다는게 고마웠다. 난 오늘 친구 일로 김포가서 울고 왔는데 넌 왜 울었냐,고 물었다. 뭐라뭐라 답을 들었다. 눈물의 이유보다는 묻고 대답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아침에 혼자 커피 마시러 와서 쓰는 중이다. 평소에 차 세워두는 공영주차장에서 일요일에도 평일과 같은 시간에 운행하는 오대산성모요양원 통근버스를 봤고 커피숍으로 오는 운전 중에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
처외조모상으로 대전에 갔다가 당근마켓 동네 소식에서 자주가는 참치집 사장님의 부고를 접했다. 다음주에 그 가게에서 사무실 회식하려고 했는데 한 발 늦었네. 그 사장님이 내 얼굴을 안다. 나랑 동갑이었네. 한국 나이 49세. 한창 갑자기 죽을 나이다. 이제 웃는 얼굴로 서로 인사를 못하겠네.
최근엔 이승환 노래 <꽃> 가사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 그대가 내 삶의 시작이었다는 고백이 이 작은 세상을 수 바퀴 돌아도 갈 곳이 없다는 내용이다. 살아야 고백도 닿는다.
누구나 다 힘든 일이 있다. 일론마스크는 혼자서 울 시간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없다면 불행한 사람이네. 살아야 울기라도 한다. 울기라도 하려면 살아야 한다.
일요일 아침, 사장님이 내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는 단골 커피숍에서 중년 남자들이 많이 우는 일을 생각해 본다.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