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오후

2021년 2월 26일 오후 한 시 청량리 역 광장
여기는 흡연구역 저기는 금연구역
비둘기들에게 둘러 쌓인 채 콜라도 없이 햄버거를 먹는 남자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닦는 시늉을 하는 그 남자
영상 15도 날씨에 한겨울 점퍼를 입은 그 남자
나를 뜷어져라 쳐다보다가 담배를 꺼내 무는 그 남자
그 옆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남자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고 내 옆을 지나간 남자
주위엔 헐거벗은 채 치솟고 있는 빌딩 빌딩 빌딩
햄버거를 먹은 남자가 역사로 들어가고
커피를 마시던 남자는 초코파이를 먹는다
그 옆에서 땅콩을 까 먹는 여자
오늘이 대보름이지
커피를 마시던 남자와 땅콩을 먹던 여자도 사라지고
비둘기들은 분주하고
여름이 오고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며
여기는 금연구역 저기는 흡연구역 팻말 근처에서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딘가
타워크레인엔 누가 타고 있고
공사중인 빌딩 벽에 매달린 건 누구인가
고개를 돌리니 커피를 마시고 있는 또 다른 남자
그 옆에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 무는 남자
비둘기들은 계속 분주하고
누군가 바닥에 빵 덩어리를 던지고
비둘기들은 더 분주하고
빌딩은 소리높이 치솟고
담배 연기가 모인 곳을 찾아가
아무것도 모른채
가만히 담배를 피우는 오후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