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보조금으로 받은 한 달 수입을 거의 다 집세로 내면서도 쫓겨나고 쫓겨나고 또 쫓겨나는 사람들 이야기다. 아래 인용한 부분 말고도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Y형은 작년에만 세 번의 이사를 했고(쫓겨난 건 아니지만 엄밀히는 쫓겨난 거다.) 우리집은 먼저 살던 집 주인아줌마한테 전세보증금을 아직 다 못 돌려받았다. 책은 미국 밀워키의 사례를 다루지만 한국에도 비슷한 일이 많겠지.
자기 집이 없으면 어쨋든 이사를 가야하고 이사 몇 번 다니다보면 그게 싫어서 무리해서 집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런 무리조차 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점점 형편이 어려운 쪽으로 나가다보면 밥을 굷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왜 집값을 낮추지 못하나? 왜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나? 이재용 구속에 나라걱정을 왜 하나? 왜 나는 이런일들에 저항하지 않나?
그동안 우리는 주거가 빈곤의 양산에 얼마나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낙후한 동네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갱단원이나 가석방 담당관, 고용주, 사회복지사, 목사와 엮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 들어 살면서 집주인과 엮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를 궁핍과 부덕이 넘치고 '모든 종류의 부서진 인간'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정치적 역량에 관한 자신감을 잃게 된다. 동네의 트라우마 수준이 높다고 인식한(즉 동네 사람들이 투옥과 학대, 중독 등 끔찍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믿는) 밀워키의 세입자들은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훨씬 낮았다. 이 같은 신뢰 부족은 동네의 실제 빈곤 및 범죄율보다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인지한 밀도 있는 고난의 수준과 더 관계가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지역공동체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감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헤어날 수 없는 가난과 어느 정도 안정된 가난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 어쩌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자린고비처럼 굴어도 가난에서 헤어날 가망이 거의 없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린고비처럼 굴지 않기로 선택한다. 돈 한 푼에 벌벌 떠느니 고통에 즐거움이라는 양념을 곁들여 화려한 생존을 시도한다. 마약에 약간 취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사기도 한다. 식료품 구매권으로 랍스터를 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