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2014/05/05 | 1 ARTICLE FOUND

  1. 2014.05.05 20140505 - 어린이날 생각 2

 장모님 환갑이라 광양에 다녀왔다. 선물은 달랑 제과점의 과자 선물세트였다. 그마저도 약간량은 서울 올라오는 차에서 우리가 먹었다. 가족들끼리 4일 저녁을 먹기로 했었기에 3일은 대학로에서 자고 4일 아침 버스로 광양에 가려고 했다. 3일 저녁에 장인 어른이 전화해서 중요한 일이 있으니 어떻게든 내려오라고 하셨다. 지후랑 나는 용산역에 가서 순천으로 가는 마지막 무궁화호의 입석표를 끊었다. 식당칸 구석에 찌그러져 앉았다. 새벽 3시에 순천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광양에 왔고, 한숨 자고 나서 장모님이 급하게 만드신 점심 약속에 참석할 수 있었다. 장모님은 나랑 지후가 농사짓는다고 하면서 돈도 못 벌고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주 불안해 하시는데, 점심 먹으면서 만난 (일종의) 도사께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잘 얘기해 줬다. 다행이다.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이 걱정을 조금 더셨을까? - 나랑 지후가 전두환, 이순자처럼 전생에 친구였기 때문에 현생에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보너스다. 가족이라도 빚보증은 절대 서지 말라는 얘기는 추가 보너스다.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작년 8월에 동네에서 주워와서 집에서만 키운 고양이 망고를 얼마전에 집 밖으로 내보냈다. 망고는 암컷인데, 처음 발정을 났을 때는 집에서 울게 놔뒀었다. 며칠후에 또 발정이 왔는데, 중성화 수술도 좋지만 아무래도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집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나서는 계속 신경이 쓰인다. 우리가 집 밖에 둔 밥을 다른 놈들에게 뺏기진 않는지, 다른 놈들에게 상처 입지는 않는지, 수컷 고양이는 만났는지, 어디 추운데서 자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녀석이 있던 자리에 자꾸 녀석이 아른거린다. 내 등에 올라탔던 일, 내 배위에서 꾹꾹이를 하던일, 줄 가지고 놀던 일, 내 손발을 물고 공격하던일, 캣타워랑 창가에 오르던 일, 아침이면 내 얼굴을 앞발로 툭툭 치던 일, 내 품에서 그르렁대면서 자던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지금도 이녀석은 밖에서 울고 나는 왠지 속이 상하다. 수컷을 만나서 발정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들여야 할까?

 

 키우던 고양이도 이러할진데, 자식이라면 더할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빈털털이에 농부가 되겠다는 녀석에게 시집을 갔다. 장모님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다. 나는 그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아내는 내 옆에 있다.

 물속의 아이들도 탈출한 선원들도 버러지같은 쇼를 한 관료들과 대통령도 나랑 지후도 장모님의 걱정도 결국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모든것은 사라진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 주변의 공기가, 곳곳에 번지는 초록이, 흐르는 강물이, 나고 드는 바닷물이, 어디에나 부는 바람이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라질 뿐이다. 안쓰러워하고 걱정하고 애쓰는 일들이 다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것은 모두의 자리에 있다. 그리고 사라질 뿐이다.

 스스로 멸망하는 종(種)이 있는가? 지금이 8시 32분인 이유를 아는 이가 있는가? 배가 고픈 이유를, 숨을 쉬는 이유를 아는 이가 있는가?  

 

 고양이 망고에게, 장모님에게, 바닷속의 사람들에게,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누군가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언젠가는 사라질 가슴속의 분노를 방치할 수 없는 밤이다. 이런 마음을 언제까지라도 계속 붙잡고 싶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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