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보통은 누나, 가끔은 제수씨)가 집들이 선물로 커튼을 만들어줬다. 우린 아직 집들이도 안했다. 말이 집들이 선물이고 그냥 강릉에 온 기념 선물같은 것이다. - 누나 고마워요. 집들이 한 번 해요. - 아내가 출입문의 아래쪽은 가리지 않도록 커튼 사이즈를 부탁했다. 난 예쁘기만 한데, 아내 생각엔 역시 문을 다 가리는 것이 좋았겠던가 보다. 아내는 일단 커튼을 그대로 뒀다가 계속 마음에 걸리면 손바느질로 두 개의 천을 이어서 원하는 길이로 맞추겠다고 했다.

어제 서울에 왔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아내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내 생각엔 아내가 유리 멘탈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아내가 짜증을 내면 난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고 결국 아내가 내 탓을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짜증을 낸다.

이 부분에서 나도 약간 멘탈 과잉이 있다. 아내가 강릉 날씨 변덕스러워, 라고 하면 나는 강릉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이 아내 마음에 안 들고 그것이 강릉에서 살자고 한 나를 탓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퉁명하게 겨울 날씨는 다 변덕스럽다. 원래 날씨란 변덕스러운 것이다, 따위의 대꾸를 하는 것이다.

아내도 미찬가지다. 내가 혼자 짜증을 내거나 욕을 할 때도 그걸 듣는 사람이 본인 뿐이니 자연스럽게 짜증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일들로 종종 다툰다.

부부란, 길이가 마음에 안드는 커튼을 수선하듯, 손바느질로 서로의 이질감을 한땀 한땀 꿰메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 둘째 이모가 놀러오셨다. 이모는 열매가 없는 꽃은 시들면 그만이고 열매가 없으면 줄다리기를 하다가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줄이 끊어지도록 놔둔다고 했다. 애를 가지라는 얘기다. 마음속으로 강하게 '저희 아기 안 가질 거예요.' 라고 하면서 아내 눈치를 한 번 보고 나와 아내를 이어주는 한 바늘을 꿰멨다.

나는 시들면 그만인 것은 좋지만 줄이 끊어지도록 두기는 싫다. 그러니 아내가 결혼 같은 건 왜 했나 몰라, 같은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목욕탕에 갔다가 불알을 꼼꼼하게 닦는 노인들을 봤다. 시간을 븥잡고 싶은 마음으로 늘어진 생식기를 붙잡고 있는걸까.

우리 시들면 그만인 채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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