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08 - 수능, 엄마

사진 2012. 11. 9. 01:01

 수능이었다. 추억 돋는다. 수험생들은 수능이란 현실 앞에 인생의 희노애락과 백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를 맛보겠지. 내가 농부가 되는 일과 볼음도에 살기라는 현실에 휘둘리는 것처럼.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가 아니더라도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그러니까 삶의 무게는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 

 서울에 와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서 수능날에는 장사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서울에 왔다. 먹을것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내가 추석 이후 나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엄마는 힘들게 농사짓지 말고 아내랑 같이 공무원 준비하라고 했다. 나는 다 계획이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했다. 농촌살이에 실패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도 했다.

 둘 중에 한명이라도 농부의 삶을 견디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다. 내가 원하는 삶에 실패 따위가 어디있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두렵다.

 엄마, 아내, 나 셋이서 보쌈을 먹었다. 588종점 뒤편의 먹자촌 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내가 자라난 우리동네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이랑 걸었다. 아 기분 좋아. 우리 엄마는 구체적으로 어떻기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냥 한 마디로 쿨한 시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편이라 지후가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다. 좋다.

 서울집은 5층인데 계단을 내려가는 아내와 나를 엄마가 배웅했다. 아내는 먼저 내려가고 나는 반층 위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에게 푹 쉬어요. 전화할게.라고 두 번 반복해서 말했다.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펴서 전화를 하는 손동작도 두 번 반복했다.

 그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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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신월동 집 근처의 오래된 연립. 자전거 때문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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