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다 갔네.라고 쓸 사이도 없이 시월이 다 갔네. 지난주도 정신 없이 일했다. 토요일은 쉬고 싶어서 치과를 핑계로 쉬었다. - 다음 토요일도 치과를 핑계로 쉬어버릴까. - 마침 몸도 안 좋았다. 덕분에 어제랑 오늘은 아내랑 실컷 놀았다. 오늘은 서울에 다녀왔다. 상수동 네파스 마켓에 갔다. 나도 좋았고 꼭 가보고 싶어했던 아내도 무척 좋아했다. 삶에 있어서 꼭 가 보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여유.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의 저축이 필요한 것이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통장 잔고 200만원을 유지해야 언제 죽어도 주변사람들이 장례비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썼다. 공감이 간다.

 

 금요일에는 종자 기능사 합격문자를 받았다. 아내도 같이 합격했다. 문자를 받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광주까지 가서 1박 하고 온 비용이 아깝지 않게 됐군.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에가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고등학교 1, 2학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랬던 것처럼 결혼을 하면 돈을 정말 아껴써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돈 나가는 일에 민감해졌다. 가끔은 내가 좀 지나친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내년에 돈을 못 벌수도 있으니 올해는 무조건 많이 모아야 한다는 거다. 지나친가.라고 생각하는 내가 주중에 직장 동료들과 술 마시는데, 5만원을 쓰기도 했고, 오늘도 아내랑 이것저것 사 먹고 쇼핑도 했으니 실제로는 전혀 지나치지 않은지도 모른다.

 

 올 초에 계획했던 두 가지 자격증을 땄으니 이제 올해 안에 담배를 끊어야겠지. 하루키는 금연할 때, 일을 하지 않고, 남들을 붙잡고 늘어지고 상스러운 소리를 많이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는다고 썼다. 좋은 방법이다. 내 금연 계획은 오늘은 하루를 참고 다음엔 이틀을 참고 이런식으로 참는 기간을 늘려가다가 지금 일을 그만두고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상스러운 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한 방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자판 두드리면서 떠올린 계획인데, 마음에 든다. 

 아까 송정역 뒤쪽에 쭈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린이 한 명이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길래 얼른 일어났다. 눈높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눈높이 교육의 반대쪽에는 눈높이 담배도 있는 것이다. 얼른 끊자.

 

 아내가 말했다. "네가 너무 다른 사람들 틈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많을거야. 그러니까 지금 하는일은 언제가 됐든 그만두는 것이 좋겠어." 지후는 현명하다. 지금 직장에서는 누구도 농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일, 자동차, 아파트, 돈 주고 여자를 사는 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렇게까지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조만간 지금 일을 그만둘 것이 분명하다. 

 아내가 말했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농진청의 사이버 교육도 받으면서 느낀건데, 너무 관에서 하는 농업쪽으로 많이 공부하면 실제 농사도 그쪽으로 치우칠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지후는 현명하다. 나는 작년에 관에서 하는 농업 교육을 6개월간 받았다. 도움은 많이 됐다. 그런데 배운 내용들은 대체로 돈이 되는 작물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쪽과 저쪽의 균형을 맞춰서 농사 짓는 것이 중요하다. 삶도 마찬가지다. 

 

 황정은의 단편 대니 드비토 중에

 

 유도 씨는 미라 씨와 더불어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가구와 식기를 비롯해 끊임없이 교체되는 물건의 값을 지불하고, 안을 기르고,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잊고,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근접한 형태로 실행하고, 좋거나 나쁘거나 이도 저도 아닌 결과들을 기다리고, 병원을 다니며 몇가지 질병을 치료하고, 중년에 접어들 무렵에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는 잠시, 많이, 방황했지만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만두가게라는 형태로 숭응해서, 노력을, 말하자면 생계(生計)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중에, 재미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이제는 상당히 쇠약해졌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견고해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걸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옮긴 부분을 요약하면 삶은 생계를 위한 계획의 반복이다.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태연하게 내 계획을 주무르자.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