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에서

나이 먹어도 자라는 게 머리칼이다
초로의 이발사가 아들뻘인 내 머리를 자르며
내 세월과 자신의 세월을 함께 잘라낸다
이발소에서는 정수리 냄새며 비듬같이
추한 것들을 남에게 보여야 한다
누구에게도 반말을 할 수 없는 이발사와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고 겸손해지는 나
남의 머리를 감겨주는 두터운 손으로
떡을 주물렀어도 좋았을 것이다
나무를 만지는 목수가 될 수도
농부나 어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마술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발사에게 무방비 상태인 몸을 맡기고
세월의 무게를 덜어낸다
삶의 어디쯤엔가 닿아있던 수염까지 밀어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서는 길에
머리가 가볍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