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후


바람의 흔적만 남은 길을 새기고
그 길의 끝에서 춤추는 바다를
그 바다의 끝에 드리운 구름을 새겼다

구름을 따라 가다가
구름에 잠긴 산을 새기고
그 안에 자작나무 한 그루를 새겼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담배 연기와 연기를 피해 달아나는 나비를
나비가 내려 앉은 들꽃 한 송이를
옅은 공기와 꽃잎의 떨림을 새겼다

온종일, 빈 가슴에
너만 새기고 다녔다

모든 흔적 지워진 날
너만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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