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황정은 | 3 ARTICLE FOUND

  1. 2012.10.21 20121021 - 여러가지
  2. 2010.12.22 20101222 - 의탁(依託) 2
  3. 2010.11.08 백의 그림자 - 황정은

 10월이 다 갔네.라고 쓸 사이도 없이 시월이 다 갔네. 지난주도 정신 없이 일했다. 토요일은 쉬고 싶어서 치과를 핑계로 쉬었다. - 다음 토요일도 치과를 핑계로 쉬어버릴까. - 마침 몸도 안 좋았다. 덕분에 어제랑 오늘은 아내랑 실컷 놀았다. 오늘은 서울에 다녀왔다. 상수동 네파스 마켓에 갔다. 나도 좋았고 꼭 가보고 싶어했던 아내도 무척 좋아했다. 삶에 있어서 꼭 가 보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여유.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의 저축이 필요한 것이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통장 잔고 200만원을 유지해야 언제 죽어도 주변사람들이 장례비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썼다. 공감이 간다.

 

 금요일에는 종자 기능사 합격문자를 받았다. 아내도 같이 합격했다. 문자를 받고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광주까지 가서 1박 하고 온 비용이 아깝지 않게 됐군.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에가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고등학교 1, 2학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랬던 것처럼 결혼을 하면 돈을 정말 아껴써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돈 나가는 일에 민감해졌다. 가끔은 내가 좀 지나친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내년에 돈을 못 벌수도 있으니 올해는 무조건 많이 모아야 한다는 거다. 지나친가.라고 생각하는 내가 주중에 직장 동료들과 술 마시는데, 5만원을 쓰기도 했고, 오늘도 아내랑 이것저것 사 먹고 쇼핑도 했으니 실제로는 전혀 지나치지 않은지도 모른다.

 

 올 초에 계획했던 두 가지 자격증을 땄으니 이제 올해 안에 담배를 끊어야겠지. 하루키는 금연할 때, 일을 하지 않고, 남들을 붙잡고 늘어지고 상스러운 소리를 많이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는다고 썼다. 좋은 방법이다. 내 금연 계획은 오늘은 하루를 참고 다음엔 이틀을 참고 이런식으로 참는 기간을 늘려가다가 지금 일을 그만두고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상스러운 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한 방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자판 두드리면서 떠올린 계획인데, 마음에 든다. 

 아까 송정역 뒤쪽에 쭈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린이 한 명이 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길래 얼른 일어났다. 눈높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눈높이 교육의 반대쪽에는 눈높이 담배도 있는 것이다. 얼른 끊자.

 

 아내가 말했다. "네가 너무 다른 사람들 틈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많을거야. 그러니까 지금 하는일은 언제가 됐든 그만두는 것이 좋겠어." 지후는 현명하다. 지금 직장에서는 누구도 농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일, 자동차, 아파트, 돈 주고 여자를 사는 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렇게까지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조만간 지금 일을 그만둘 것이 분명하다. 

 아내가 말했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농진청의 사이버 교육도 받으면서 느낀건데, 너무 관에서 하는 농업쪽으로 많이 공부하면 실제 농사도 그쪽으로 치우칠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지후는 현명하다. 나는 작년에 관에서 하는 농업 교육을 6개월간 받았다. 도움은 많이 됐다. 그런데 배운 내용들은 대체로 돈이 되는 작물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쪽과 저쪽의 균형을 맞춰서 농사 짓는 것이 중요하다. 삶도 마찬가지다. 

 

 황정은의 단편 대니 드비토 중에

 

 유도 씨는 미라 씨와 더불어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가구와 식기를 비롯해 끊임없이 교체되는 물건의 값을 지불하고, 안을 기르고,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잊고,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근접한 형태로 실행하고, 좋거나 나쁘거나 이도 저도 아닌 결과들을 기다리고, 병원을 다니며 몇가지 질병을 치료하고, 중년에 접어들 무렵에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는 잠시, 많이, 방황했지만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만두가게라는 형태로 숭응해서, 노력을, 말하자면 생계(生計)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중에, 재미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이제는 상당히 쇠약해졌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견고해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걸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옮긴 부분을 요약하면 삶은 생계를 위한 계획의 반복이다.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태연하게 내 계획을 주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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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버지께 의탁하고 있다. 몸만 의탁하고 있다. 애초에 나란 아이의 마음이란 것은 의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혼자 살았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밥을 혼자서 차려 먹지 않아도 되는 것만해도 굉장한 이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구나 작은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으시다. (특히, 김치) 

 시골 생활은 즐겁다.

 강릉 생활이 변산 생활과 다른 두 가지는 씻고 나서 저녁을 먹는다는 거랑, 술을 안 먹는다는 거다. 술을 안 먹어도 생활은 즐겁다. 변산에서도 정말 즐거웠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의탁(依託)이다.

 변산에서는 비용이 들어가는 모든 것을 공통체가 책임져 주기 때문에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됐다. 스스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시간들이 즐거웠던 것이다. 거기다 그곳에는 어린이들이랑 청소년들이 있었다.

 강릉에서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돈벌이로 산불감시 일을 하고 있고, 의식주는 공동체에 그랬던 것처럼 작은아버지께 의탁함으로써(집과 먹을 것이 있으면 사람이 생활하는데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편하게 지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에 대한 대답으로 올해의 문제작 '백의 그림자'에서 한 구절을 찾아서 옮겨 본다.

  빚을 지는 것이 어째서 필연이 되나요?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腹)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공산품이 나쁜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렇군요. 

 축사를 확장하는 공사 도중에 땅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작은아버지가 심란해하시는데, 구제역이 강원도까지 넘어왔고 이제 대관령만 넘어오면 바로 우리 동네기 때문에 심란함이 더욱 깊어지셨다. 얼마전에 저녁 식사 하시면서 '매일 매일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하셨던 분이신데.....(그 자리에서 내 소원은 장가가는 거였다. ㅡ.ㅡ;)

 어제 달 표면을 눈 앞에서 구경하는 꿈을 꿨다. 작은아버지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역시 약간은 심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올해도 가고 뭔가 좀 심란해서 적어 봤다. 의탁도 좋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쪽이 더 사는 것 같으려나?

 p.s 엊그저께 티비에서 말이 새끼 낳는 장면을 봤는데, 어미가 새끼가 일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길을 떠나는 장면을 보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요즘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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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황정은

2010. 11. 8. 19:56
짧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정말 오랜만에 국내 작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평론가 신형철의 한 문장 정리가 매우 적절하다.

이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수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 낸, 일곱 개의 절(節)로 된 장시(長詩)다.

무재 씨, 춥네요.
가만히 서 있어서 그래요.
죽겠다.
죽겠다니요.
그냥 죽겠다고요.
입버릇인가요.
죽을 것 같으니까요.
무재 씨가 소매로 풀 즙을 닦아 내고 똑바로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죽을까요?
여기서, 라고 너무도 고요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겁을 먹었다. 새삼스럽게 무재 씨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엔 좀 헝클어진 듯 부풀어 있던 머리털이 빗물에 젖어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정말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무렇게나 죽겠다고 말하지는 마요.
네.
그러면 계속 걷죠, 라면서 앞서 걷는 무재 씨를 따라서 걸었다. 눈물이 솟았다. 무재 씨처럼 매정한 사람은 먼저 가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나대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 숲에서, 그림자마저 일어난 처지에 그럴 수도 없었서 눈을 닦으며 걸었다.
울어요?
울지 않는데요.
이런 대화를 나누며 걷는 동안 공기가 문득 가벼워졌다. 무재 씨가 멈춰 서서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비가 멈췄네요.
네.
껌 씹을래요?
네.                                        -12page-

나는 이런식의 대화가 좋다. 사람들은 멋들어지고 긴 말들보다는 짧은 얘기들을 나누게 마련이다. 그것이 연인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사람들의 대화는 보통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씨'는 의존명사라 띄어써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제 나한테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작가의 필치를 따라서 써보면 이렇다.


아무래도 이 작가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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