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사 렌즈가 생겼기에 몇 개 찍어봄. V50보다 mi8이 카메라가 더 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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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컷
투구꽃
당귀꽃
백합나무
클로버 꽃과 벌
잣나무가 있는 풍경
옥천동 체육공원
강릉 남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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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가을
Mr. SB, Thank you.
강릉 남대천
동해시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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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대림동에 있는 ‘이상철 통증의학과’에 오늘까지 두 번 다녀왔다. 지난주까지는 팔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는데 - 의술이 지금처럼 발전하기 전에는 대상포진 걸리면 너무 아파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함. - 지금은 아픔이 많이 가셨기에 이렇게 일기도 쓴다. 아버지가 강릉으로 왔기 때문에 당분간 서울 갈 일 없을줄 알았는데, 다음주까지 3주말 연속으로 서울 가게 됐네. 병원이 지하철역에서 멀리 있어서 다니기가 피곤하다. 그래도 아픈것 보다는 낫다. 어깨 통증이라고 생각했던건 실제로는 팔 통증이었고 명절 전에 우연히 만난 아저씨에게 이 병원 얘기 못 들었으면 강릉에서 병원만 계속 옮겨다닐 뻔 했다. 서울로 가기 전에 강릉에서 한의원 두 곳 포함해서 병원 네 군데를 들렀는데, 어느곳에서도 나의 팔 통증을 경감시키지 못했다. 강릉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유명한 병원이 괜히 유명한 건 아니구나, 지방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아프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부터 찾는 게 괜히 그런건 아니구나, 를 이번에 몸으로 깨달았다. 8시 예약이고 7시 30분에 병원 도착했는데, 내가 네 번째였다. 내 앞에 오신 아주머니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지난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부산에 실업자가 너무 많고 경기가 안 좋다는 소식을 치료실 칸막이 너머로 들려주신 그 아주머니 쾌차하시길.

 너무 아플때는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하니까 몇 가지 생각을 했다.

 - 건강은 술값보다 중요하다.

 - 감옥 독방이나 보호자 하나 없는 병실에서 본인이 죽을 것을 알고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일을 생각해봤다.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에서 푸틴의 정적이라는 나발니란 사람이 그렇게 죽었다. 일정 때 감옥에서 쓸쓸히 죽었을 독립 투사들도 생각해본다. 독립 투사들이야 말로 못 먹고 얻어 맞고 고문당하다가 기력 떨어져서 죽는 괴로움의 결정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 내 인생에 행복했던 일이 막 떠오르진 않지만 소소한 순간들에 즐거움이 있었고 불행이 생을 휩쓸고 가진 않았다. 어깨 통증도 지나갈 일일 뿐이다.

 - 샤워실에 꼭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해바라기 샤워기 같이 단순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사소하고 간절한 열망이 오늘을 살아가게 한다. 나의 해바라기 샤워기는 무엇일까?

 - 봄이 온다고 말해주는 아내가 있으니 나는 외롭지 않구나. 너는 나의 신선한 이마다.

 강릉에는 눈이 많이 왔다. 눈 때문에 이틀동안 출근을 못했다. 정확하게는 수요일에는 출근 못하고 목요일에는 일 때문에 억지로 출근했다가 - 차가 눈에 미끄러져서 1시간 30분 걸림 - 급한일만 처리하고 미끄러지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발 700미터에 있는 우리 사무실은 눈이 1미터 20센티미터 쌓여있다. 팔은 쉬지 않고 아픈데, 눈도 쉬지 않고 내리고 덕분에 강제로 휴가를 쓰게 되니까 많이 우울했다. 그 와중에 수요일 아침에는 눈길을 운전해서 산림기사 1차 시험을 보러갔다. - 합격했다. - 그렇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는 내 인생에서 아직 포기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보험, 아버지 일, 어깨 치료, 출근같이 귀찮은 일들 다 내팽개치고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망가진 중년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무너지지 말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팔 통증과 함께 싸우고 있다.

 오늘 진료 마치고 오산에 엄마한테 들렀다. 엄마는 지난해 연말부터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콩 h지수 연계 ELS에 노후자금이라 생각한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뉴스에 나오는 불행이 바로 내 것이거나 내 옆에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엄마가 차려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 앞에서는 맛 없어도 맛있게 먹는게 내 철칙이다. 김치찌개는 맛이 있었다. 미스 트롯 재방송 보면서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대출 받아서 투자한 사람들이나 전세사기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무너지지 말고 너무 우울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게 실제로는 나한테 하는 얘기다. 엄마가 오산터미널까지 태워줬다. 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들면서 ‘안녕 내 사랑’ 두 번 말했다. 들으라고 말했으니까 엄마가 들었을거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봐서 힘이 됐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알고 나 아픈거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내랑 엄마 뿐이다. 빨리 낫고 싶네.

 요새 글이 잘 안된다. 독서 부족인가?

사무실 근처. 3년째 한 자리를 찍고 있다. 4년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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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가 아프다. 지난주 월요일에 정형외과에 들렀다. 엑스레이상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깨나 너무 아프다. 화요일엔 작년에 허리 아플 때 들렀던 한의원에 갔다. 목 디스크가 급하게 온 것 같다면서 당장 치료가 불가능하니 통증의학과로 가라고 했다. 한의사 선생님의 친구가 하는 통증의학과에 갔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어깨가 점점 더 아프다. 수요일 목요일에 물리치료 받았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가는데, 어깨를 부여잡고 10번 이상 쉬어야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 선생님도 괜찮은지 안타깝게 물어봤다. 팔을 감싸쥐고 숙인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병원 간호사 선생님들 얼굴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봤다. 어깨부터 팔뚝까지 끊어질 듯 아프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아프다. 명절 내내 아프다가 어제 약간 괜찮아졌지만 진짜 약간 괜찮아졌을 뿐이다. 어깨를 주무르면 괜찮을까 싶어서 세라잼 안마기 체험장에 가서 안마기에 누웠는데 안마기가 주물럭 거릴때마다 너무 아팠다. 오늘 2차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사무실까지 30분 운전해서 오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사무실 동료가 강력한 진통제를 줘서 한 알 먹었다. 지금은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을 정도는 되는데, 이 호전됨이 진통제 때문인지, 주사 때문인지,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토요일 아침 여덟시에 서울에 있는 통증의학과 예약했다. 강릉에서 1년간 병원을 다녀도 계속 아프던 어깨가 그 병원에 한 번 다녀오고 다 나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명절 지났으니까 이제 정월이다. 양력으로 2월 13일이니까 아직 연초라고 할 수 있다. 연초부터 아픈게 정초까지 아프네. 정초라고 하면 음력이 되고 연초라고 하면 양력이 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어제 살짝 덜 아픈김에 요양원 들러서 아버지 보고 왔다. 아버지의 횡설수설은 점점 심해지고 내가 먼저 이름 얘기 안하면 내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 같지만 내가 본인 아들인 건 안다. 그리고 1주일 전에 봤을 때보다 요양원 생활에 더 적응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휴 끝에 근무 중이던 영양사 선생님이 식사 잘 하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안심이 됐다. 생의 마감만이 존재하는 공간인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아버지, 별일 없으면 주말마다 만나러 갈게요.
 
 연휴 내내 나 때문에 신경 써 주고 아버지 만날 때도 같이 가준 아내에게 고맙다. 연휴 동안 둘이 밥 잘 챙겨 먹었다.

 나 아프다니까 엄마가 매일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본다. 고맙고 사랑한다. - 며칠 전에 전화 끝에 '안녕, 내 사랑' 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그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네.

 장모님 장인어른도 딸의 신랑이 아프다고 하니 신경쓰는 전화를 주셨다. 고맙습니다. 사위를 직접적으로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걱정해주시는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으로 산다. 나도 우리 아버지도 세상에 많은 사람들도. 그렇지만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나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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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 없이 적어 본다.

 토요일에 아내 운전 연습을 겸해서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 갔다. 정말 잘 생긴 암컷 호랑이를 봤다. 기분이 좋아졌다. 겨울 나무도 종류별로 많이 봤다. 춘양면에 방 잡고 읍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라면 둘, 김밥 한 줄, 김치전 한 장(5,000원)까지 도합 16,000원 어치를 저녁을 먹었다. 너무나 맛있었다. 호랑이를 본 일까지 좋은 일이 연속으로 있었다. 로또는 이번주에도 꽝이었다. 오는길 가는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오른쪽 사이드미러 들여다보느라 많이 피곤했지만 아내의 운전이 많이 늘었다.

 어제 아버지 만나고 왔다. 1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직원분이 면회는 30분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야속하단 마음과 다행이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적응중이다. 명절에 아버지를 데리고 엄마한테 같이 갈지 말지 계속 고민중이었는데, 아버지는 가고 싶은 눈치라 내가 힘들어도 같이 가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진다.

 그리고 나는 한 달 째 어깨가 아프다. 어제는 한 잔 하고 술 취해서 잠들었는데도 어깨가 아파서 자다 깼다. 아내가 나를 안타깝게 지켜봐줬다. 사랑이다. 내가 아버지 얼굴 보러 간 걸 포함해서 아픈 사람 지켜봐 주는 게 사랑이다.

 오늘 아침에 폭설 때문에 출근하다가 차를 돌려서 집으로 왔다. 돌아온 김에 병원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 상으로는 어깨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진통제와 근육이완제(+위장약)를 처방 받았다. 서서히 재활 하면 좋아지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사무실에 처리할 일이 있어서 2시에 출근하긴 했는데,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하다. 35번 국도 타고 삽당령 정상을 오르는데, 내려오는 제설차 4대를 마주쳤고 미처 눈을 다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눈을 뚫고 출근을 했나, 후회막심이다. 

 몸이 아프니까 자연스럽게 <위기의 중년> 이 떠올랐다. 자포자기 하듯 어깨 치료도 게을리하고 매일 적당히 지내면서 저녁엔 술 마시고 운동도 안 하다보면 <위기의 중년>이 아니라 만성적으로 우울을 끼고 있는 <체념한 중년> <망가진 중년>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되는 일이 너무도 쉽겠구나 생각했다. 나를 생각해서도 지금 상태로 무너지면 안되겠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더욱더 <건강한 중년>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노력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한 잔 했다. 친구는 아버지 가업을 이어서 농업으로 새출발을 하려고 한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곳이지만 기댈 곳이 있고 그 기댈 곳이 가족이라면 기대는 것이 좋다, 는 게 내 평소 생각이다. 친구한테 그 얘기를 해줬다. 친구는 중년은 다 위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친구가 아버지한테 농사 잘 배워서 돈도 적당히 많이 벌고 나한테 맛있는 것 많이 사주면 좋겠다.

 이 기록을 남기는 동안 계속 어깨가 아프다. 저녁에 약 한 봉지 더 먹어야겠다. 근데 이 폭설속에 오늘 집에 내려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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