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를 돌무덤으로 보내는 도라지 꽃

지난주에 이어서 또 서울에 왔다. 신월동 본가에 짐을 풀었다. 시장통을 걷다가 고로케를 두 개 사 먹었다. 크기도 내가 만날 사 먹던 때 그대로고 가격도 그대로 한개에 오백원이지만 속은 텅 비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여전히 빠리 바게뜨 고로께 보다는 맛있다.

집은 여전했다. 냉장고는 텅 비었고 아버지는 동생 와이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동생은 회사 땡땡이 치고 자고 있었고 양천방송에서는 내 휴대폰으로 통장에 잔고가 없다는 문자를 보냈다. - 요금은 동생 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 - 잠들었다 저녁에 깼는데 동생은 마시러 나갔고 아버지는 막걸리 한 병과 저녁 식사 중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요즘 보는 일드 제목이 '그래도 살어간다'인데, 뭔가 맞아 떨어진다.

군대에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청년들이 죽어나간다. 시립대 다녔던 학생 사건 때 마음에 많이 안 좋았는데, 오늘 비슷한 소식을 또 들었다. 첫 번째는 슬프고 안타깝다가 말지만 같은 것이 반복되면 화가난다. 명박씨가 말한대로 패기있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남들 안 하는 일을 선택해서 열심히 현실에 맞서던 젊은이 둘이 불과 며칠 사이에 사고를 당했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아주 안 좋은 조건이지만 강릉에 작은아버지가 계시고 농사가 정답이라는 교육과 체험, 당신을 통해 시골로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스펙에 시달리고, 농사일의 즐거움을 모르는, 남들이 생각하는 경제적 기준이 꼭 보편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다 때려치고 시골에서 살아라' 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ds는 반값 등록금 투쟁 대학생들에게 학교를 안 다니면 될 것을 괜히 징징 댄다고 했더랬는데, 맞는 말이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가운데, 스스로 대학을 포기 하는 것과 ds처럼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다닌 것은 분명 다르다.

공교육은 최소한 젊은이들 스스로가 !빚은 지지 말고 살아야지! 라고 깨달을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같이 교육 받는 사람들 중에는 교육을 마치고 저리로 돈을 땡겨서 큰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교육 중에도 그렇게 하라고 허는 게 많다. ㅡ.ㅡ) 내 생각엔 그러면 안된다. 빚은 가난보다 더한 스트레스기 때문이다.

걱정과 푸념과 불만을 품 속에 지닌채, 둥둥 떠 다니는 '국가'라는 시스템 위를 걷고 있다. 느리고 조심스럽게.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연대'(함께하기)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밤이다.

그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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