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지난주에 몰아치는 일정이었다. 충주 출장이 두 번 있었고 두 번째 출장을 마치고는 강릉이 아니라 서울로 갔다. 금요일엔 친구들 만나고 토요일엔 아버지 만났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친구들은 어떻게든 살고 있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살아있으면 살아야 하는게 인생이라 그렇다.

 아버지는 많이 야위었고 순대국 한 그릇을 70%정도만 먹었다. 위 절제술의 영향이다. 영양제라도 드시게 해야 할까? 종합영양제를 사서 저희 아버지 좀 챙겨주세요, 하고 데이케어센터에 맡기면 아버지가 지금보다는 건강해 보일까? 나이탓도 있겠지만 건강한 70대 초반 아저씨들에 비해서 아버지는 그냥 보기에도 많이 쇠약해 보인다. 아프면 그렇다. 아버지는 코 밑에 수포가 잔뜩 생겼다가 가라앉는 중이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 젊었을 때부터 피곤하면 코 밑에 같은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독감 후유증이거나 면역저하 같은 것이겠지. - 아버지 낫고 있는 중이니까 얼굴 그만 만지세요.

 지금 같은 페이스로 아버지 몸이 약해지면 2~3년 후에는 요양병원에 가야할 판이다. 그때까지 직장을 서울로 옮겨서 아버지랑 같이 살까, 생각해봤다. 아버지가 뭘 잃어버리거나 어딘가 안 좋거나 할 때마다 둘째 이모한테 부탁할 순 없는일이니까, 아버지 거처를 강릉으로 옮기면 집 나온 아버지가 수시로 길을 잃어버리고 실종된 사람을 찾는 문자에 아버지 이름이 나올까 걱정되니까,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나는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지 않을 거니까 몇 년 정도 아버지랑 같이 사는 것도 괜찮단 생각이다. 그냥 생각뿐이다. 계획대로 되는 건 거의 없으니까.

 엄마는 악몽을 자주 꿔서 머리맡에 칼을 두고 잘까 생각한다고 한다. 아마 그 원인은 은행직원 말만 듣고 홀랑 가입한 ETF가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겠지. 엄마는 예전에도 머리맡에 칼을 두고 자서 두통이 사라진 적 있다고 한다. 걱정이지만 무속신앙 같은 것이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버지는 의지할 것이 없다.

 - 아버지 저희 주말에 얼굴 볼거에요.
 - ……..
 - 아버지 제가 토요일에 갈거에요.
 - ……..
 - 아버지 저희 금방 만날거에요.
 - 아이고 좋아라.

 날 만난다고 하니까 아이처럼 아이고 좋아라 하는 아버지를, 본인 때문에 서울 올라오느라 내가 힘든걸 아는 아버지를, 그래도 아버진데 니가 해야지(목적어 없음) 라고 하는 아버지를………

 직장(옮김)도 아버지(거처)도 돈(없음)도 다 어렵다. 이 세 가지가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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