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에 아버지한테 전화왔다. 어제 두 시 넘어서 잤는데. 새벽에 전화 오는 건 흔한일이다. 아버지는 엄마한테도 새벽에 전화를 한다. 엄마는 아버지한테 애 자는데, 왜 전화하냐고 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는데,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잊는 사람이 됐고 나는 새벽 다섯시라도 아버지한테 전화가 오는 쪽이 마음이 놓인다. 아버지는 학교(데이케어센터) 가려고 집 앞 골목에 나와 있다고 했다. ‘아버지 아직 한 시간 반 남았어요. 미리 나가 계시지 마세요.‘  30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같은 말 반복, 30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같은 말 반복. 또 전화오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했다. ’미리 나가 계시지 마세요.‘ 반복. 일요일 낮에 통화했을 때, 아버지 목소리가 쉬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아침엔 목이 더 쉬었다. 얼마전에 아버지가 이불을 다 치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날씨가 변덕인데 아무것도 안 덮고 주무신데다가 보일러도 전기장판도 활용할 줄 모르니 감기는 당연한 결과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 때문에 충주 본사에 갔다가 오는 길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목이 많이 붓고 열이 나는 상황이니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일감으로 둘째 이모를 떠올렸다. 엄마를 통해 이모한테 부탁해서 내일 아침에 이모랑 같이 병원에 가는 방안이다. 엄마가 아버지 병원 혼자 갈 수 있다고 해서 센터에 얘기해서 아버지를 일단 병원으로 보냈다. 그 병원 간호사랑 통화하기까지 아버지랑 몇 번의 통화가 오고 갔다. 그 병원은 여전히 불친절하다. - 먼저는 감기로 병원에 갔는데, 치매약을 처방해 줬다. - 거기도 거기의 사정이 있겠지. 나랑 통화한 간호사는 자식 새끼들은 뭐한다고 치매 노인을 혼자 병원에 보내나, 같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병원비를 내지 않고 처방전을 받지 않았고 병원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왔다. 결국 둘째 이모가 현장에 투입됐다.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긴 한데, 이모가 일일이 챙겨줄수는 없다. 내가 챙기는 게 낫다. 아버지 전세 만료되면 바로 강릉으로 오는 게 낫겠다고 100프로 확신했다. 아버지는 점점 중증으로 가고 치매 상태에 비해서 신체는 매우 건강하다. 언제까지가 될 진 모르지만 아버지 몸 건강한 동안에는 주말에 아버지랑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나다. 아내는 ’우리가 해야지 아버지잖아‘라고 하지만 - 참 고마운 말이다. -  나도 언제까지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을진 모른다. 아버지는 병원을 나와서 데이케어센터에 돌아갔다. 센터에서는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났지만 남은 밥이 있어서 아버지 저녁 챙겨줬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센터에 간호부장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도 당연히 그 애정을 알고 그 선생님이 휴가로 며칠 센터에 출근하지 않았을 때, 목소리에 불안감이 있었다. 본인 직업에 춭실할 뿐일수도 있지만 너무 고마운 선생님이다.

 지금 내가 느끼기엔,
 엄마에겐 엄마의 삶이 동생에겐 동생의 삶이 있고 나에겐 아버지랑 함께 하는 나의 삶이 있는 것 같다.

 오늘 아버지 병원 가는 일로 전화 통화 20번 넘게 했고 고속도로에서 계속 전화기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내가 훅, 갈 수도 있었다.

 아버지랑 계속 통화하다보면 진이 빠진다. 힘들어서 한 잔 하고 싶은 날인데, 집에서 혼자 맥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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