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에 아버지랑 순대국 먹었다. 보통은 아버지만 특을 시켜드렸는데, 나도 특 시켜 먹었다. '특' 이란 말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는 게 웃기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 그런걸로 치기로 했다. 배부르면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남겼다. 아버지가 순대국 남긴 거 처음 봤다. 아직까지 위암 수술의 여파가 남아 있다고 봐야겠지. 혼자서는 순대국을 못 사 먹게 된 아버지. 앞으로는 아버지 만나면 메뉴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순대국 먹는 걸로 정했다. 아버지가 페브리즈를 손에 분사해서 화장품 처럼 얼굴에 바르길래 그러면 안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아버지가 본인 몇 살이지 나한테 물어봤다. 아버지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 살짝 눈물이 났다. -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많이 들으려고 한다. 아버지랑 프로축구 울산vs포항 후반전을 TV 중계로 봤다. 게임은 명승부였는데, 아버지는 TV화면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세탁기를 못 돌리는 사람이 됐다. 예전에 동생 와이셔츠 다려주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 일요일에 드시라고 전복죽을 사 놓고 갔는데,  아버지는 먹지 않았다. - 못했다. -  
 
 아버지랑 헤어지고 엄마집에 왔다. 다 커버린 아기새가 늙은 어미새와 아비새 둥지를 번갈아 방문하는 모양새다. 엄마는 본인은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진짜 잘 사는 거 맞나? 엄마에게는 오산에서 살면서 형성한 엄마만의 세계가 있긴 하다. 엄마가 딸기 갈아줬다. 엄마가 끓여놓은 김치찌개랑 밥을 먹었다. 엄마가 김치를 싸줬다. 김치 싸주면서 김이랑 깡통햄도 같이 줬다. 나는 아버지를 챙기는데,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을 챙기고 있네. 어미새는 늙어서도 아기새를 돌본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엄마를 잊으면 안된다. 우리집에서 엄마집까지 210km, 별 것 아닌 거리다. 엄마를 자주 봐야겠다. 엄마랑 둘이 여행가는 프로젝트는 마음속에 항상 살아 있다. 
 
 곧 장모님 70세 생일이다. 장모님의 아기새는 요즘 울적하다. 나도 울적한지 오래됐다. 다 잘 될거라고 하니까 나의 작은새가 웃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그 웃음으로 내가 산다. 장인어른이 나한테 전화 안한지 좀 됐다. 굿. 각자 본인 부모님 챙기면서 사는게 결혼생활이겠거니 한다.
 
 3월에 좀 덥더니 어느덧 날씨가 제자리를 찾았다. 출퇴근길과 현장에서 봄을 맞아 요동치는 산과 나무를 본다. 예쁘다. 4월에게 자리를 내주는 중이지만 여전히 계절의 여왕은 5월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괜찮다. 자꾸 괜찮다고 하는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안다. 다 잘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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