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릉에 불 났다. 산에서 시작했으니 산불이라고 하나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유림관리소 산불 담당자였다. 정선은 산불이 자주 나지 않지만 소소하게 산불이 발생하고 동해안 쪽 대형산불 지원을 포함해서 현장에 많이 갔다. - 담당자니까 당연하겠지. - 처음 산불 현장에 갔을 때, 말로만 듣던 산불을 직접 보는 것에 대한 신기함이 있었는데 그때 한 번 뿐이었다. 직업인 입장에서는 산불현장에 가면 울화가 치민다.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들 타는 걸 보면 속이 상하다. 잿더미인 산을 보면 윗줄과 다른 종류의 울화가 치민다. 세상이 끝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뭐 여튼 그렇다. 어제 산불은 건물을 많이 태웠다. 터전이 타버린 사람들은 이루고자 했거나 이루었던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진 느낌이겠지. 전쟁의 결과가 그러할 것이다. 아직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으니 다행인걸까?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무너지는 날이 올까? 다들 그러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다. 

 아버지는 본인이 무너진 걸 모르는 채 무너져버렸다. 그건 불행 중 다행인건가? 어제 아버지 친구가 대전에서 아버지를 찾아왔다. 핸드폰 충전하는 법을 잊어서 수시로 전화기가 꺼져있는 아버지 핸드폰 통화목록이나 카톡 대화창에 그 친구분 이름을 많이 봤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예전에는 한 동네 살아서 자주 만났던 친한 사이라고 했다.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가 요양병원 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면회라는 단어를 썼고 내가 그런게 아니라고 알려줬다. 아버지의 얘기에 따르면 데이케어센터에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한 걸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친구랑 저녁도 잘 먹고 호수공원에서 산책했다는 얘기를 어제 네 번 오늘 아침에 두 번 했다. 그만큼 좋았단 얘기겠지. 아버지를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했더니 니가 더 고맙다고 했다. 고맙단 말 오랜만에 들었다. 그 말이 말이 위로가 됐다. 고맙단 말을 위로의 말로 등록해둔다. 출근길에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아버지 전화기가 꺼진걸 알았다. 다행히 센터 직원이 출근하다가 시장통에 있는 아버지를 발견해서 같이 센터에 왔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도 아버지 혼자 센터에 찾아갔을 것이다. - 집에서 센터까지 100미터 안됨. -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만해도 정말 다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조금은 맘 편하게 강릉에서 아버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전세 계약기간 종료되는 10월에는 강릉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엄마가 반대하더라도. -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강릉 전체가 쑥대밭이 됐을수도 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려고는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 때문에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오늘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저녁식사 자리에 희생양으로 가게 되서 기분이 안 좋은 찰나에 가지 끝에서 새로 시작하는 층층나무 잎을 봐서 고맙다는 말 만큼이나 위로가 됐다.

20220412 시작하는 층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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