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 김밥을 먹다

지하철 가판대
야채 김밥 1500원
원자재값 상승으로 부득히 200원 인상된 가격
부득이와 부득히는 햇갈릴 수 있는 세상
마침 천 원짜리 한 장과 오 백원 짜리 동전 하나가 있어서
언젠간 먹어 보고 싶던 김밥을 먹는다
새벽부터 어딘가에 모여서 그 김밥을 싸고
김밥을 은박지로 감았을 손과
그 손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그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생각하다
그들의 고향도 생각해 보고
내 고향은 어딘가, 하면서 김밥을 먹는다
김밥속의 연근이며 시금치며 단무지가 내 입까지 들어오는 경로를 생각하며
세계의 질서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세포처럼 꼽아보며
김밥을 먹는 나도 그 중에 하나인 것을 알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마음으로
못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김밥을 먹는다
2000원에 한 봉지에 여덟 개가 들은 호두과자 옆에 쌓인 김밥을
한 줄
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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