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를 먹다

밤으로 가는 시간
늦은 해장으로 돈까스를 먹는다
혼자 온 손님은 나뿐이고
맞은편의 젊은 부부는 아이에게 고기를 잘라 준다
수프 깍두기 된장 단무지가 먼저 나온다
- 이것 참 한국적이군
이어서 돈까스 두 쪽이 나온다
- 돈까스도 나만큼 외롭진 않군
한 개를 급하게 먹는다
이제 좀 공평하다
어제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 술을 마셨다
삶이 순탄치 않을 때마다 그렇게 된다
기억을 잃도록 마셔도 바뀌는 건 없으므로
다음날은 뭘 먹어도 해장이 된다
해장 돈까스 해장 햄버거 해장 라면
해장에 고기의 때가 묻지 않은 음식이 없다
-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칼을 움직일 때마다
어디 부딪쳤는지 모르는 손등의 멍이 얼얼하다
어제 술상대를 해준 청년에게 질투를 느꼈던가
나는 그이에게 오만하게 굴었던가
튀김옷과 돼지고기가 따로 노는 돈가스를 내 생활에 비유하고 싶진 않다
-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맛있군
잘 먹었다는 인사는 거짓이 아니었으니
그거면 됐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