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Ursula K. Le Guin | 4 ARTICLE FOUND

  1. 2011.07.04 어둠의 왼손 - 르 귄 - 2
  2. 2010.06.28 하늘의 물레(The Lathe of Heaven) -르 귄- 2
  3. 2010.04.19 20100419 - 서부 해안 연대기 3
  4. 2008.08.13 20080812 - 여러가지 2

어둠의 왼손 - 르 귄 -

2011. 7. 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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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만에 다시 읽었는데, 예전 읽었을 때 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그렇지만 르 귄은 <르 귄>


 
 이 부분만이라도 영문판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17장. 오르고린 창조신화
 


 평론가들은 페미니즘 SF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보내지만 나는 르 귄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통찰력이 좋다. 

 어제는 무척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활자들을 쭉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당신이랑 함께라서 좋았다.

AND

 이 작품은 '어둠의 왼손'(1969년)과 '빼앗긴 자들'(1974년) 사이에 쓰여진 작품이다. 세 작품을 묶어서 르 귄의 유토피아 삼부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최고 전성기에 쓰여진 작품답게 거대한 주제를 아름답게 다루고 있다. 모든면에서 중앙(중도)의 상태에 있는 자는 꿈을 꾸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고 싶은 야심가는 꿈 꾸는 자의 꿈을 이용한다.는 줄거리다.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목적이 바로..... 뭔가를 하고 뭔가를 바꾸고, 뭔가를 다스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의 목적이 뭐죠?"  "모르겠어요. 사물은 목적이 없어요, 우주가 마치 하나의 기계인 것처럼 거기서 모든 부분이 유용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일 뿐이죠. 은하계의 기능이 뭘까요? 우리의 삶이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르고 그것이 중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의 부분이라는 것이죠. 피륙 속에 실 한 가닥이나 들판에 풀잎처럼요. 그것도 일부분이고 우리도 일부분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은 풀밭에 부는 바람 같은 거라고요."  ~~~  "당신은 유대 기독교 합리주의의 서구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는 독특하게 수동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네요. 일종의 타고난 불교 신자로군요. 동양의 신비주의를 공부해 본 적이 있나요, 조지?"     130p


 적의 없고 증오 없는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할까? 그녀는 의아해했다. 우주에 결코 심술궂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악을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면서도 전혀 그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물론 존재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순수한 동정심에 운명의 물레로 돌아왔던 사람들, 그들이 그 길을 따른다는 것도 모르는 채 따를 수 없는 길을 따르는 사람들, 앨라배마에 소작농의 아내와 티베트 라마승과 페루의 곤충학자와 오데사의 목공과 런던의 채소 상인과 나이지리아의 염소 치기와 오스트레일리아 어디쯤 메마른 강바닥 옆에서 지팡이를 깎고 있는 늙고늙은 노인과 다른 모든 이들. 우리는 모두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들은 충분히 많다, 우리가 계속 나아가도록 할 만큼 충분히. 아마도.     157p


 에~ 그러니까~ 그렇다~

AND

르귄의 서부 해안 연대기 세 편을 읽었다.

오렉 카스프로.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마지막 편인 '파워'였다.

안정적인 노예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던 소년이 누이의 죽음을 계기로 세상에 눈을 떠가고 자신의 존재를 찾아간다는 줄거리다.

소년은 주인의 집에서 전쟁과 누이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산 사나이의 동굴, 탈출 노예들이 만든 두 곳의 공동체, 자신이 태어난 부족 마을을 거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책과 이야기들이 가득한 대학이 있는 메순이라는 도시에서 오렉 카스프로를 만나며 정착한다.

소년이 거친 모든 장소들에서 느꼈던 불합리함을 자유 도시 메순의 책과 시와 노래들이 잊게 해줄까? 
소설은 소년이 눈물을 흘리며 끝난다. 

생의 말년을 맞은 작가가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책과 이야기들에 대한 고마움을 성장 소설의 힘을 빌려 풀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1편은 '자유'를 노래한 위대한 시인 오렉 카스프로의 혼란스러운 청소년기가 주제다.

결말을 찾아가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진진하다.
결말을 찾아가는 중년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
둘 다 여기저기에 많이 널려있는 주제들이다.

그렇다면 소년들이 하듯이 결말을 찾아가는 중년들의 이야기는 조금 신선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지만 삶에는 결말이 없다.는 것이다.
AND

 입추가 지났지만 며칠간은 밤에도 더웠다. 보통은 입추가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는 살짝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건만 시간의 힘만으로 우주의 변화를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는데, 지아장커 영화의 주인공들이 많이 생각난다. 올림픽은 하는데...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까? 중국에는 "농민공"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의 60년대에 도시로 상경한 사람들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오히려 산업혁명 이후에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같은 느낌일까? '상계동 올림픽'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올림픽 한다고 사람들을 내 몰고 한국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베이징에서 어떻게 뭘 관리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올해는 황사 횟수가 적었고, 맑은 하늘이 많았다. 어제의 붉은 저녁 하늘도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약간 한가한 날들도 생기면서 살짝 슬럼프가 찾아왔다. 우려할 정도는 아닌데, 버티면 돈이 생긴다는 생각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나는 역시나 한심한 것 같다. 그리고 곧 바빠질테지~~~
 함춘호 아저씨가 라디오에 나와서 슬럼프가 자주 찾아온 다는 얘기를 한 것도 극복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대가에게 찾아오는 슬럼프와 즉물인간에게 찾아오는 슬럼프는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암튼 여러가지에 약간 질렸다. 그 강도가 약간이라 다행이다. 내 단순한 계획을 위해서 내가 약간으로 조정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좋겠다.
 지난 일요일에 찍은 사진 한 장~~ 비행기 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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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빤따스띠크' 읽다가 르귄의 '기의 사람들' 이란 단편을 읽었다. 우리가 사는 차원면이 아닌 다른 차원면에 '기'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흡사 새와 같이 생겼다. 그들 중에 작은 확률로 성인이 되면서 날개가 생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곳의 역사에서 그런 사람들은 주술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의 사람들은 다른 차원면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특별히 묻지 않는한 날개가 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는다. 날개가 돋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뼈가 가벼워 지고 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데, 언제 날개의 기능이 정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날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고, 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다가 추락해서 죽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굳이 말해주지는 않는 정도의 비밀을 간직하는 사람들이란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나도 언제 멈춰 버릴지 모르는 날개를 달고 펄럭펄럭 날아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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