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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5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 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네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 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증 가장 깊은 곳에 내려 앉은 물 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 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 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하며
  스물 두살 앞에 쌓인 술병 먼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게를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버린 사람들이 나지막이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어제 잠깐 짬을 내서 네이버의 공선옥 누나 블로그에 들렀다. 오랫동안 새 포스팅이 없다.
뭐 원래도 뜸하게 업데이트 된다. 예전에 좋게 본 장정일의 시를 복사해 왔다.
장정일은 '충남 당진 여자'라는 시를 썼는데, 장정일을 모르는 건영군은 당진에서 일하게 되었고, 내가 알고 있는 충남 당진에서 난 여자는 방송 작가일을 하고 있다. 시를 읽으면서 사철나무를 머릿속에 그려보지만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 시의 포인트는 '사철나무 그늘'이 아니라 '살다가 지친 사람들'에 있어서 그런것 같다. 그렇지만 바빌론 강가에 앉아서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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