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사라마구 | 2 ARTICLE FOUND

  1. 2007.08.24 리스본쟁탈전
  2. 2007.08.23 주제 사라마구 '돌뗏목'

리스본쟁탈전

2007. 8. 24. 22:29
그럼 그냥 듣기만 해요, 내가 선생님한테 전화한 건 외로웠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내 건강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마리아 사라. 내 이름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요. 마리아 사라, 난 당신이 좋아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정말이에요. 그 말을 하려고 뜸을 참 많이도 들였네요. 어쩌면 절대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왜요. 우린 서로 달라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요. 선생님과 내 세계의 차이점에 대해 선생님이 뭘 알아요. 짐작하고 관찰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는 있죠. 그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옳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고, 틀린 결론을 내릴 수 도 있어요. 맞아요, 지금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왜요. 난 당신 사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혹시 당신이. 결혼했냐고요. 예,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약속한 사람이 있냐고요, 이건 구식 표현이지만.  예. 뭐, 내가 이미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이 날 좋아하지 않게 될까요. 아뇨. 만약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 결혼했거나 약혼했다면, 선생님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나요, 내 마음이 그런데도. 잘 모르겠어요.그럼 내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걸 선생님도 알고 있군요. 긴 침묵이 흘렀다.그런가요. 예, 그래요. 저기요, 마리아 사라. 얘기하세요, 라이문두, 하지만 먼저 말하는데, 난 삼년 전에 이혼했고, 석 달 전에 남자와 헤어진 후로 아직 아무도 사귀지 않았어요, 아이는 없지만 무척 아이를 갖고 싶어요, 지금 결혼한 오빠와 같이 살고 있는데, 아까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내 올케예요, 어제 당신 집에서 내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 여자는 당신 파출부죠, 자, 교정자 씨, 이제 말해도 돼요, 내가 이렇게 성질을 부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너무 기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왜 나를 좋아하는 거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선생님이 좋아요. 그럼 일단 나를 알고 나면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런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죠, 사실, 아주 자주 일어나요.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로를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난 당신이 좋아요. 난 그 말을 믿어요.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문장을 쓰는 법도 내용도 다 너무 좋다. 돌뗏목 때 처럼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고 할 순 없지만 정말 대단한 작가다. 부러워만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라마구씨. 아직도 '히카르도 헤이스가 죽은 해'가 번역되길 기다리면서.....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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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선가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별자리로 향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소, 그런데 그 별자리는 또 우주의 어느 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거요, 나도 더 알고 싶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요, 여기를 보시오, 우리는 반도에 있소, 반도는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소, 바다는 자신이 속한 지구와 함께 돌고 있소, 지구는 자전을 하지만 태양 주위를 돌기도 하오, 태양 역시 자전을 하고 있소, 그러니까 이 모두가 앞서 말한 별자리를 향해 하고 있는 거요, 따라서 나는 혹시나 우리가 이 운동 내의 운동으로 연결되는 사슬에서 마지막 고리가 아닌지 자문해 보고 있는 거요, 사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 안에서는 무엇이 움직이느냐, 그것은 어디로 가느냐 하는 거요, 아니, 아니, 나는 벌레나 세균이나 박테리아, 그러니까 우리 안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소, 별자리, 은하계, 태양계, 태양, 지구, 바다, 반도와 되셰보가 움직이면서 자기들과 더불어 우리를 움직이듯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움직이는 어떤 것 말이오, 그러니까 나머지 전체를 움직이는 것의 이름은 무엇이냐 하는 거요, 사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어쩌면 사슬은 없고 우주는 하나의 고리인지도 모르겠소, 아주 가늘어서 우리와 우리 안에 있는 것만 들어갈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굵어서 최대 크기의 우주, 즉 고리 자체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말이오,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의 이름은 뭘까. 보이지 않는 존재는 인간과 함께 시작됩니다.

                                       사라마구 '돌뗏목' 중에서

아주 긴 질문, 간단하고 놀라운 대답 주제 사라마구가 좋다.

사라마구 작품은 대체로 좋지만 '돌뗏목' '리스본 쟁탈전'  '모든 이름들'이 특히 좋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읽을땐 충격이었는데, 인상적인 구절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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