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백석 | 3 ARTICLE FOUND

  1. 2011.02.03 20110203 - 민족 대이동 그리고...
  2. 2008.12.14 백석 - 통영(統營) 2
  3. 2007.11.01 내가 생각하는 것은 - 백석 -

 이번 설 연휴에 3100만명이 귀성길에 오른다고 한다. 해외로 놀러가는 사람들은 58만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이니까 어림잡아 60%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이다. 귀성길에 오른 3100만명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은 숫자일거다.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몇 해 전에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명절 연휴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화장실에 간 애인을 기다리는 공원 매점 앞, 파라솔 아래에 두 사람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국물이 있는 것을 마주 앉은 어린이는 짜장(자장)을 앞에 두고 있다. 테이블에는 김밥도 두 줄 놓여있고, 여자는 이미 한 캔의 맥주를 비우고 두 캔째를 시작했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는 한 올 한 올 면발을 집어 먹는데, 여자는 보란듯이 김밥을 라면 국물에 찍어서 아귀아귀 씹어 먹고는 맥주를 들이킨다. 두 사람은 한 마디 말도 섞지 않는다.

 담배 한 대가 타들어 가는 동안 특별할지도 모를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다가 애인과 함께 그들을 뒤로했더랬다.

 설 쇠러 서울에 올라왔다. 엄마 얼굴을 보니까 참 좋다.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백석-

오늘은 정월 보름이다
대보름 명절인데
나는 멀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옛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로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였만
나는 오늘 때 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히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고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날엔 으례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 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어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던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안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 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을
외로히 타관에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펏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로다
아, 이 정월(正月)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소리 뺄뺼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AND

백석 - 통영(統營) 2

2008. 12. 14. 20:13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AND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백석-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도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 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란'이라는 처녀가 그 처녀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 시집을 간 일화가 있다고 한다. 백석 시집을 가끔 읽으면 기분이 좋다. 울지는 못하겠고 슬프기는 한데.... 그래서 머릿속의 슬픈 생각들이 자신을 울게 할 것을 생각만하는 마음...
나는 이런 마음이 좋다. 이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는 백석도 좋다. 흰 바람벽에 글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시로 써 준 백석!

 2007년 2월 24일의 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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