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내기를 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못밥이 정말 맛있었다. 강릉에서는 전통적으로 못밥으로 팥밥에 미역국을 먹는다고 한다. 강릉은 상가집에 고깃국이 아니라 미역국이 나오는 곳이니 그럴법하다. 그런데 왜 팥밥일까? 여튼 나는 팥밥을 정말 좋아한다. 몸도 힘들겠다 아침부터 팥밥을 끝없이 먹었다. 다섯시에 일을 시작해서 집에 들어오니 여덟시 반이었다. 허기가 몰려들어서 팥밥을 꾸역꾸역 입 안에 때려 넣었다. - 아침에 설사했다. - 내년부터는 기계를 빌려서 잘 못 심더라도 내가 심어야겠다.

집에 와서 들은 첫 소식이 순달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피똥을 쌌고 주사약을 이틀간 맞았지만 결국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순달이는 번호표만 남겨놓고 가버렸다. 우리 우사는 엉망이다. 농번기라 관리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이럴거면 소를 키우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순달이는 죽었는데 나는 못밥으로 소고기 미역국을 먹었다. 앞으로 고기 섭취를 더 줄여야겠다.

사람들은 기계가 모를 심으니 모내기가 크게 힘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강철같은 작은아버지가 저녁식사를 마치시자마자 씻지도 않고 바로 주무셨다. 나는 말랑말랑한 인간이라 느즈막히 잠들었다. 나도 현재 무척 피곤하고, 피로가 폭풍처럼 밀려들어 오는 중이다. 그렇지만 일년내내 이렇게 일하는 것이 아니니 가끔은 몸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서 빨리 내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집에서 일꾼마냥 일하는 게 아니라 모든것이 내 영향력 아래 있는 상황을 꿈꾼다. 그게 농사다.

우리논이든 남의 논이든 모가 심어진 논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감정들이 얽히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논일은 늘 재미있다.

좋아한다고 평소 먹던 양의 배로 먹으면 탈이난다. 오늘 아침에도 팥밥 먹었다. 약간 쉰내가 났지만 맛있었다. 탈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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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3 - 논일

그때그때 2011. 5. 13. 21:30
 어제랑 오늘은 논일을 했다. 어제는 작은아버지가 논삶기에 앞서서 1차로 논을 갈아 엎었다. 나는 삽으로 논둑 정리 좀 하다가 한 다래기(두락=마지기, 강릉에서는 다래기라고 부른다. 한 다래기가 꼭 200평은 아니다.)를 시험삼아 갈아 엎어봤다. 역시나 트랙터는 너무 힘이 세서 재미가 없다.

 오늘 아침 먹으면서 작은아버지가 '원래 성격이 그렇게 느긋하냐'고 물으셨다. 어제 시험삼아 한 다래기만 갈아 엎은 게 맘에 안드셨던 모양이다. 마지막에는 '일을 틀리게 하더라도 빨리빨리 해야지'라는 말까지 들었다. 살면서 일 느리단 얘기 처음 들어봐서 살짝 충격 받았다. 고무신 신고 설렁설렁 다닌다고 일하는 속도도 느린건 아닌데.... ㅡ.ㅡ;

 아침 먹고 논을 갈기 시작했다. 트랙터 바가지로 논둑도 까고, 높은데 있는 흙을 낮은 자리로 옮기면서 열심히 했다. 세 시간 동안 두 다래기 밖에 못 했다. 그렇지만 여섯 다래기 밖에 안 남았고 남은 논들 중에는 논둑을 깔 곳이 없으니 오후에는 다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점심 챙겨 먹고 논에 가려는데, 논 옆에 물길을 정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결국 오후에는 계속 삽질했다. 중간에 힘들어서 소 여물주면서 잠깐 쉬었다. 7시쯤 다 끝냈다. 삽질하는 중간에 지나가던 동네 분들과 몇 마디씩 나눴다.

 "오전에는 논 삶더니, 저 논 자네가 삶았나? 처음 삶아보는데 잘 삶네. 앞으로 많이 배워서 남의 집 일도 해주고 해야지." 등의 얘기를 들었다. 칭찬 받았다. 기분 좋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무신 신고 설렁설렁 다닌다고 일하는 속도가 느린 건 아니다. 어제는 비도 오고 내가 트랙터를 좀 싫어하는 측면도 있고 해서 일부러 한 다래기만 갈았던 거였다. 
 
 각설하고, 논일은 재미있다.

 변산에서 논에 김 매던 생각이 난다. H는 김 매다 말고 뒤 돌아서서 논에 오줌을 갈겼고, - 이게 다 거름이 된다는 말을 남겼다. - 어느날에는 다들 지쳐서 오후 참 먹고 벌렁 드러 누워서 뭉개다가 다들 취하도록 막걸리를 먹었더랬다.  

 그때 일은 그냥 생각만 하고 나는 지금의 나에게 충실한 게 중요하다. 그때는 일만 생각하면 됐다면 지금은 생활을 생각해야 된다. 아직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고 앞으로는 점점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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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 노란 건 거미, 역시나 봄은 노랑색
 고추 심고, 허리 피러 할아버지 산소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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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비닐 다 씌우고, 오늘부터 고추를 심기 시작했다. 15*7짜리 포트 23개를 심었다. 그 중에 내가 14개를 심었다. 대충 1500주(개, 포기? - 포기가 맞는 표현인 것 같음.) 정도다.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했더니 허벅지가 땡긴다. 쭈그리는 걸 힘들어하던 영재 생각이 나서 간만에 통화했는데, 마음이 풍성하다. - 쉽게 말해서 울컥울컥하다. - 

 영재한테는 계속 존대말을 하는데, 내가 '영재 씨'하고 부를 때, <백의 그림자>의 '무재 씨'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가 '형'하고 나를 부를 때, 나는 '은교 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대화할 때는 존대하고 글로 쓸 때는 그냥 이름 적어버리는 관계는 참 좋은 것 같다. ^^ - 서울가면 꼭 연락할께요. - 

 

01



 내일도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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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고추 심을 밭에 갔다. 전체 700평 중에 4분의 1 정도에 여전히 비닐이 덮여 있었다. 나는 거름 피고 작은어버지는 로타리를 쳤다. 비닐 위에 소똥을 펼치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한참 일하는데 검은 나비(호랑가시나무)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멤돌았다. - 상민 씨 땡큐. 우리나라 대부분의 밭이 그렇다는 얘기는 역시나 위안이 안되네요.-  비닐이랑 같은 색이다. 다음 생에는 무지갯빛 몸을 달고 태어나렴.

 오후, 작은아버지는 비닐위에 로타리를 쳤고, 나는 관리기로 두둑 잡았다. 관리기 로타리에 검정 비닐이 걸려서 막 돌아갔다. 내 마음은 검고 어지럽다.

 작은아버지의 생각 - 고추는 자랄만큼 자랐는데, 토요일에 비는 온다고 하고, 내일까지 무조건 비닐을 씌워야겠다. 

 내 생각 - 토요일에 비가 많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요일에 비만 오지 않으면, 일요일에도 밭에서 일 할 수 있다. 비닐은 그때까지 씌우고 월요일, 화요일에 비가 온다고 하니 그때 심으면 고추 심고 물 안줘도 되니까 일하기는 더 좋다. 천천히 일하면 좋겠다.

 결국 내일 쎄가 빠지도록 비닐 씌우게 생겼다. 사람도 한 명 불렀다고 하신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비닐밭에 로타리 치는 것도 막지 못하는 내가 무슨 힘이 있겠나. 그냥 푸념이다. 이래놓고 나중에 비닐밭에 고추가 열리면 그 고추 따 먹겠지.... 에효~~ 

 기왕 이렇게 된거 토요일에 비나 실컷 왔으면 좋겠다. 바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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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부터 고추밭 손질 중이다. 올해는 700평을 심을 예정이다. 고추모는 잘 자라고 있다. 농사 잘 짓는 사람들은 한 번만 옮겨 심는다는데, 우리는 두 번 옮겨 심는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내년부터는 한 번만 옮겨 심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4월 마지막 주말에 고추밭에 소똥 거름을 냈다. 헉! 밭에 비닐이 덮여있었다. 작년에 다른 사람이 옥수수 심었던 밭이어서 작은아버지도 비닐이 안 걷힌 걸 그때 아셨다. 그런데, 비닐을 걷지 않고 계속 거름을 냈다. 나는 속으로 '이건 농사가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춘천에 가서도 고추밭 때문에 기분이 쭉 별로였다. 일주일만에 컴백했는데, 고추밭은 그대로였다. 월요일에는 석회비료랑 맞춤비료를 뿌렸다. 기계는 자꾸 멈추고 - 결국 마지막에는 손으로 뿌렸다. 성에 차더라. ^^; - 비닐 때문에 계속 마음은 어두웠다.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비닐은...?" "걷어야겠지?"란 대답이 돌아왔다. 비닐 위에다 로타리 그냥 치겠다고 하셨으면 의절을 심각하게 고려할 뻔 했다. 

 어제랑 오늘에 걸쳐서 비닐을 걷었다. 풀들이 쑥쑥 자라는 시기인데다가 사람들이 하도 밟고 다녀서 비닐 제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 오후 6시 30분 경에 비닐 제거를 마쳤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그렇지만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다.

 작년에는 모든 작물이 다 망한 가운데, 고추도 흉작이었지만 올해는 고추 대풍을 기대해 본다. 


 저녁 때 기타를 깔짝거리고 있는데, 둘째 이모한테 전화가 왔다. 개두릅이랑 곰취를 채취해서 보내라고 하셨다.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동네에는 곰취가 많이 없고, 개두릅은 우리걸 다 먹은 관계로 남의 것을 몰래 훔쳐야 하는 상황이다. 결정적으로 내가 너무 힘들어서 사진 찍을 짬도 못 내고 있다. 시골에 있다고 뭐든지 그냥 펑펑 나는 건 아니다. 오늘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한 시간 정도만 쉬고 계속 일했다.(밥 먹는 시간 포함 ㅡ.ㅡ)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지 뭔가 부탁을 받으면, 남한테 사서라도 꼭 보내주려고 하시는데,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다. 

 이모 죄송해요~~~ 춘천 가면 시간 많으니까 아침으로 산에 다니면서 좀 뜯어 볼께요.
 엄마, 쑥 뿌리도 제가 춘천 갈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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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6 - 순돌이

사진 2011. 4. 16. 00:20

012

 

 태어난 지 두달만에 나보다 힘이 세졌다. ㅡ.ㅡ
 아프지 말고 쑥쑥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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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랑에 빠진 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 철수하라는 문자를 받고 잽싸게 집에 돌아왔다. 내가 운전하던 차는 식구들이 꼬마차라고 부르는 '라보'. 왼쪽으로는 도랑이 흐르고 오른편에 창고로 쓰는 하우스를 지나 두엄자리 왼쪽에 있는 낮은 비탈에 차를 세웠다. 비탈이라고는 하지만 30cm정도 높이고 비탈을 오르면 평지인 곳이다. 꼬마차가 들어가기에 딱 좋은 장소인 것이다. 모든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2단 기어에 차를 세우고 기어를 중립에 놓은 뒤 차가 살짝 뒤로 밀리는 느낌을 받고 내일 아침에 바로 후진으로 나가야 되니까 기어를 후진으로 옮겼다. '얼른 자야지' 생각하고 빠른 속도로 차에서 튀어 나왔다. 도랑을 건너 집에 들어가다가 잠깐 뒤를 봤는데, 차가 도랑으로 후진하고 있었다. '쿵'하더니 뒷바퀴 두 개가 다 도랑에 처박혔다. 도랑 바닥에서 지상까지의 높이는 1m 30cm 정도다. 꼬마차는 앞바퀴 두 개만 지상에 달랑 내밀고서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30분 만에 출동한 레카차는 10분 만에 차를 꺼내더니 3만원을 받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라지는 레카차를 보면서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라고 했다. - 이 대사를 정말 오랜만에 했다. - 두 분은 웃으셨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는데, 물의를 일으킨 입장에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쉽다.

 며칠 전에는 낮에 바쁘게 일하다가 산불 출근 시간에 늦었었다. 급한 마음에 꼬마차를 후진으로 빼다가 오른쪽 뒷바퀴를 도랑에 걸친 적 있었다. 이 정도는 '물의'라고 부르기 어렵다. 


 급한 마음

 작은아버지는 일할 때, 마음이 급하시다. 농사를 오래 지으셨으니 일이 익숙할만큼 익숙한데다가 농사일을 빨리 마쳐야 저녁 때, 본업인 수정일을 빨리 마치고 집에 오실 수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누가 재촉하면 일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스타일이다. 나는 가만히 혼자서 내버려두면 차분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곤 한다. 엄마를 닮아서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농사일이 많이 익숙해지면 내게도 급한 마음이 생길거라고 생각한다. 일을 빨리하면 많이 놀 수 있으니까 그렇다. ^^


 쓰레기, 농부

 오늘은 옥수수 심을 밭에 소똥 거름 내고, 밑거름 뿌리고, 로타리 치고 두둑 잡고 비닐도 조금 씌웠다. 그래 우리집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모두 사용해서 농사를 짓는다. 감자밭에는 살충제를 뿌렸는데, 이번에는 뿌리지 않았다. 무농약 인증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동네 논 두렁, 밭 두렁에는 비닐, 빈 농약 병, 음료수 캔 등 각종 쓰레기가 즐비하다. 나는 쓰레기를 잘 치우는 농부가 되고 싶다. 아까 점심 먹으러 집에 오다가 빈 맥주 캔이 보이길래 낫에 찍어서 집에 가져왔더랬다. 작은아버지가 "그런 건 뭐하러 주워오나!"라고 하셔서 "쓰레기를 잘 치워야죠."라고 했다.
 농부는 직업을 부르는 말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직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요즘 이런 생각을 했다. 자기 먹을거리는 무농약, 무비닐로 깨끗하게 키우고, 남에게 파는 것은 약 팍팍쳐서 키우는 사람은 농부가 아니다. 그이의 직업은 비즈니스맨이다. 반면에 농약 많이 묻혀서 키운 농산물을 암시렁않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농부다. 나는 농부후보생이다. ㅎㅎㅎ
 

 농기계

 우리집에 기름을 먹는 농기계로는 경운기, 트랙터, 두발관리기(외발관리기와 구분), 비료살포기가 있다. 나는 이것들의 작동원리는 대충 다 알고 있고, 필요에 따라서 기계를 사용해서 하는 일도 곧잘 한다. 그런데, 성격 때문인지 내가 다루는 것들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자동차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뭔가 이상한 마음가짐이네. 자세히 알고 싶다는 것이 작동원리를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구나. 피곤해서 쓰다보니 이상하게 되버렸다. 그냥 각종 농기계들을 자동차 운전하는 정도로는 일상적으로 다루고 싶다. 열망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열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짤방은 동네에서 찍은 사진, 소나무가 삐딱하게 서 있는데, 삐딱해도 살아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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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이다. 봄철 산불조심 알바를 다시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바뀌었다. 이번에도 공직생활을 오래하신 연세가 지긋하신 분과 함께다. 나는 주로 얘기를 듣고 맞장구를 쳐주는 쪽이기 때문에 크게 바뀐건 없다. 아저씨가 DMB로 KBS뉴스를 보시더니 박정희 예찬을 늘어 놓으신다. 박정희가 기와집을 지었는데, 다음 대통령들은 집에 세간을 들일 생각은 하지않고 기왓장을 팔아먹었다는 맥락이다.

 어제 아침을 먹다가 작은어머니께 새 파트너가 박정희를 좋게 얘기해서 들어주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괜히 말했다. ㅡ.ㅡ) 작은어머니께서는 "나도 좋아하는데."라고 하셨다. 최근 작은어머니는 독도 관련 뉴스가 나오면 격분하시면서 저런 놈들을 도와줘야 하냐고 자주 묻는다. 그러면 나는 우리나라에도 밥을 굶는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에서 해외선교를 나가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니냐고 묻고 싶기도 하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내 새 파트너분께서는 박정희 얘기를 하시면서 북한에다가 이것저것 다 갖다 퍼줬다면서 DJ와 노무현을 욕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비슷한 과정의 사유를 하고 계신듯하다.

 중요한 사실은 박정희는 일본사람이고 한일수교를 맺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따님께서 쿠테타를 일으킨 전두환에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곁가지로 알아두자. 

 작은어머니는 이스라엘을 좋아하신다. 성지순례도 다녀오셨다.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은 박정희는 일본사람이라는 것과 배고픈 시절을 겪었던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다수가 박정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다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본을 따라하지 않은 것은 AV 산업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냥 좀 이상해서 적어둔다.

 요새 '빅뱅이론'을 보고 있기 때문에 조금 삐딱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짤방은 박정희와 무관한 하늘 - 폭설에 무너진 하우스 철거하다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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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우는 23일에 태어났다. 너무 어린 덕분에 아직 번호표를 붙이지 않았다. 순우는 숫송아지다.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따와서 이름 지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완전 귀엽다. 오늘은 하루 종일 감자 심을 밭에서 비닐을 걷었다. 올해부터는 해를 넘겨서 농사를 앞두고 비닐을 걷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비닐 걷는 중간에 송아지들 보러 갔더랬다. 여섯 마리가 막 뛰어다니는 모양이 내 얼굴을 환하게 만든다. 



애미가 저녁 먹는 틈을 놓치지 않고 세차게 젖을 빠는 순우

 


'푸딩 카메라'란 어플을 받아서 테스트로 찍어봤는데, 잘 나왔다. 얘네 둘이 사귀는 건 아니다. 아이폰에 달린 카메라가 내 생각보다 더 맘에 든다.


 
 4.3 완탈 나오면 해킹해서 유료 카메라 어플도 다운 받고,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파판3 - DS 판을 이식했는데, 퀄리티가 매우 높다. - 를 즐기려고 했는데, 무심결에 4.3.1 업데이트를 눌러버렸다. 당분간 파판은 터치로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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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 붙인 순달이


 아침 여섯 시 반에 마구간에 올라가서 소들한테 사료를 줬다. 오늘은 젖소들 10마리가 한꺼번에 경기도 가평으로 팔려나가는 날이다. 얼룩이의 움찔거리는 표정과 구유 바깥으로 사료를 다 흘리면서 쩝쩝거리는 먹쇠를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엄청 섭섭했다. 그래서 젖소들한테는 평소보다 사료를 많이 줬다. 그네들은 자기들의 운명도 모르고 잘 먹는다.

 아침을 먹고 여덟시에 마구간에 다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송아지들 귀에 번호표를 찍었다. 오른쪽 귀에는 번호표를 왼쪽 귀에는 그냥 동그란 플라스틱을 찍는다. 나는 송아지들을 붙잡고 작은 아버지는 번호를 찍는다. 마치 예전에 봉제공장에 다닐 때, 새 옷에 가격택을 찍듯이 송아지들 귀에 번호표를 찍는다. 순돌이, 순규, 순영이, 순달이, 순식이까지 다섯 마리는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는 번호로 불릴 것이다. 순돌이는 귀에 피가 났다. 얼마나 아팠을까? 작은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다.

 젖소들을 차에 실었다. 역시나 예전에 봉제공장에 다닐 때, 옷 박스를 화물차에 싣듯이 마구 실었다. 끝까지 타지 않으려고 힘을 썼던 한 마리는 결국 밧줄과 트랙터를 연결해서 압도적인 힘으로 짐칸에 구겨 넣었다. 3.5톤차가 오는 바람에 여덟 마리만 차에 태웠다. 임신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두 마리는 좀 더 키워서 새끼 낳기 서너달 전에 팔기로 했다. 짐짝이 되어 구겨진 소들을 태우고 가평까지 달렸다.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젖소들의 새 주인이 된 아저씨는 구제역 파동으로 소 198마리를 묻었다고 한다. 돈은 많이 벌겠지만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래도 젖소들의 새 집은 우리 외양간 보다는 널찍하고 좋은 환경이었다.

 저녁에 사료를 주러 올라갔더니 소들이 왜 이제 오느냐면서 일제히 울어 제낀다. 사료를 부어주고 짚단을 올려주는데, 짚단에서 물컹한 것이 만져진다. 자세히 보니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린 쥐다. 분홍색이다. 예쁘다. 두 마리다. 대수롭지 않게 소들한테 던져버리고 그 짚을 소들에게 줬다. 

 저녁 먹으면서 작은아버지에게 그런 걸 먹여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아무 문제 없다고 하셨다. 

 소들은 나한테 위로를 주는데, 나는 소들한테 먹을 것만 준다. 가끔은 위생적으로 매우 불결한 것도 준다. 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뭔가 뒤틀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들도 나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소들을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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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물, 멕시코 담배

사진 2011. 3. 22. 20:34


강릉에 눈이 왔다. 많이 왔다. 이것이 눈이 오면 확연히 드러나는 집 앞 도랑의 검은물이다.




이 선배가 준 멕시코 담배 '빠로스'.
다 피웠다.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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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을 샀다. 맘에 든다. 마지막으로 돈을 주고 핸드폰을 샀던 게 10년 전이다. 언제부턴가 핸드폰을 현금박치기로 팔지 않고 할부로 파는 제도가 생겼다. 그러더니 이제는 할부로만 판다. 결국 2년 약정에 할부로 핸드폰을 산다는 것은 신용카드로 물건 사는 것과 비슷하다. 빚을 지고 사는 꼴이다. 이건 마음에 안든다.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이런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내 동생께서는 빚더미 위에서 살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엄마)에게 미안해하지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 또는 그렇기 때문에 - 내 명의로 되어있는 서울집의 인터넷 요금을 자꾸 밀려서 나한테 독촉 문자가 오게 한다. 한 번만 더 문자 오면 얘기 안하고 해지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페이스타임으로 조군이랑 통화를 했다. 화질이 선명하다. 또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확실히 아이팟 터치 2세대의 디스플레이와는 다르다. 확실히 이것은 미래다. 미래라는 것은 상상했던 상상하지 않았던 찾아온다. 나는 SF소설을 무척 좋아하지만 친구랑 화상통화를 하는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나는 아이폰도 샀고 여전히 최신형의 각종 device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의 미래는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가오는 미래를 피할 수는 없다.

 술이 취해서 썼던 지난번 글을 보니까 적나라한 게 있어서 좀 부끄러웠다. '이 세계는 파국으로 가고 있다'느니 하는 문장이 마음에 걸린다. 변산에서 H형이랑 자주 했던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 둘 다 미래 앞에 잘 살고 있다.

 내가 농부가 되기로 한 건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이 왔을 때, 내 직업이 농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디가서 이 얘기를 할만한 곳이 없어서 자꾸 잊게 된다. 

 
 오늘 작은아버지와 했던 문답 두 가지
 
 (농협 이사 선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쓴다는 얘기와 서로 다투고 있다는 얘기들을 한 후에)
나중에 조합장 나갈 생각있나?
     저는 정치 무용론자라서

 (오전에는 상토도 옮겼고 하우스에서 고추 작업하느라고 꽤나 몸이 힘들었다.)
농촌이 만만치 않지?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현실이 되면 힘들어 질까요?


 늦었네, 자야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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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6 - 35486, 순달이

사진 2011. 3. 16. 17:55

새끼 잘 낳으라고 며칠째 독방을 쓰고 있는 35486 - 뭔가를 먹거나 앉아서 쉬지 않을 때, 소들은 주로 핥으면서 논다.
 
순달이,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됐기 때문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을 뿐이다.

 순달이, 기운차게 움직이질 않는다. 젖도 빠는둥 마는둥 한다. 걱정이다. 내가 관찰하지 않을때만 활발하게 노는지도 모른다.

개나리 꽃망울일까? 엊그제 찍었다. 강릉에는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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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2 - 외롭다

그때그때 2011. 3. 12. 18:00

 작은아버지 내외가 울릉도로 여행을 가셨다. 2박 3일이지만 아침에 가셨다가 밤 늦게 오시는 일정이기 때문에 내게는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온전한 3일이 생겼다. 

 시골에서 혼자 산다는 건 어떤걸까?

 목요일 새벽에 송아지가 태어났다. 오전 내내 송아지를 관찰했다. 젖을 물지 않길래 젖병에 젖을 짜서 먹이려고 했는데, 젖이 나오질 않는다. 흠.... 어미에게 문제가 있는걸까? 잠시후에 송아지는 세차게 어미 젖을 빨기 시작했다. 이번 송아지 이름은 순달이가 좋겠다. 현재 외양간에 살고 있는 네 마리 송아지들 중에 가장 예쁘게 생겼다. 송아지가 어미 젖도 빨았으니 크게 할 일이 없다. 마트에 가서 담배와 맥주를 샀다. 첫 번째 페트를 비우고 나서 오른손 손톱을 잘랐다. 반만 잘랐다. 예쁘게 길러서 기타에서 멋진 소리가 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두 번째 페트를 비우고 나서 손톱을 마저 잘랐다. 굳은살도 잘라냈다.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금요일 아침, 어제 자른 손톱 때문에 후회가 밀려왔다. 굳은살을 너무 많이 잘라내서 손끝이 아리다. 그래도 기타소리는 정직하니 다행이다. 오후에 친구가 왔다. 어머니가 담근 복분자주를 들고 왔다. 혼자서 신나게 마셨다. 신나게 마신만큼 신나게 떠들었다. 취해서 떠든일에 대해서 후회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런 기분이 나를 더욱 떠들게 만들었다. 친구는 나랑은 달라서 농사는 부업으로 글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어차피 이 세계는 파국으로 가고 있으니 뭐든 나쁘지 않겠다.

 토요일, 2시 가까워 잠들었는데, 7시에 깼다. 술이 덜 깼지만 차를 끌고 외양간에 올라갔다. 소들은 내가 없으면 굶어 죽고 나는 소들이 없으면 외로워 죽는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관계다. 한우 한 마리가 새끼를 낳을 것 같은 기미를 보여서서 순달이랑 순달이 엄마(9240)이 있는 칸으로 옮겨줬다. 송아지들한테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어미소는 번호로 부른다. 마치 SF영화(블레이드 러너)에서 안드로이드들을 부르는 것 같다. 밤사이 일본에는 지진이 났다. -'도쿄 매그니튜드' 같은 작품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니다.- 7번 국도를 타고 신나게 달려서 친구를 주문진에 내려줬다.
 내가 강릉에 내려온 다음에 많은 친구들이 '한 번 놀러갈께'라고 했지만 실제로 놀러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변산에서도 그랬다. 친구들이란 것은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 또는 '언제 술 한 잔 해야지'랑 같은 맥락으로 '놀러 한 번 갈께'라는 말을 쏟아낼 뿐이다. 놀러 온다는 말을 실천에 옮겨준 친구가 무척이나 고맙다.

 35486은 꼬리를 동그랗게 말고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새끼를 낳지는 않았다. 한참을 관찰했다. 새끼를 낳더라도 밤 늦게나 내일 새벽에 낳을 것 같다. 소들 저녁밥을 주고, 집으로 내려와서 김치 부침개를 만들었다. 건강을 위해서 올리브유를 사용했다. 어제 다 해치우지 못한 복분자주를 먹었다.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대한민국 강릉에 사는 나는 김치 부침개를 안주로 복분자주를 먹는다. 이건 필리핀 산 바나나 한 송이를 1,500원에 파는 것 만큼이나 weird한 상황이다.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다른 나라의 소식을 굳이 뉴스에 내보낼 필요가 있는걸까?

 허망함이 허무하게 밀려든다.

 외롭다.

 나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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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7

그때그때 2011. 2. 27. 17:35
 서울에 다녀왔다. 기분 좋은 칭찬을 들었고 여러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한 시대를 끝내려고 하는 선배에게서 멕시코산 담배 한 갑과 울림이 좋은 기타를 얻었다. 멋진 조합이다.

 강릉오는 버스에서 한 시간, 어젯밤에 열 시간, 오늘 오전에 세 시간을 잤다. 서울독(毒)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오후에 눈을 뜨니 아침에 내리던 비가 눈으로 변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바닥에 닿은 눈이 녹는 속도가 눈이 내리는 속도를 이기지 못해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눈이 치울만큼 쌓였을 때, 마당으로 나갔다. 며칠만에 잡아보는 눈삽과 손수레가 낯설지 않다. 열심히 치웠지만 눈은 내가 치우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쌓여 갔다.  

 치운 눈은 손수레에 담아서 집 앞을 흐르는 도랑에 버렸다.

 아뿔싸,
 물이 검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물이 검다.
 검은 물 위에 흰 눈덩이들을 쏟아 부었다. 눈이 검게 물들었다.

 이번 생(生)은 틀린걸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독(毒)과 검은물 때문이다. 대설 때문이다.

 눈은 쌓이지만 2월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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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3


 바지랑대 옆에 오징어는 말라가고 어제랑 오늘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식구는 셋인데, 오징어는 네 마리다. ㅡ.ㅡ;

 살랑살랑 소 아침 여물 주고, 살랑살랑 고추 모종에 물 주고, 살랑살랑 트럭을 몰고 구정면에 가서 등겨 실어오고, 살랑거리면서 소 저녁 여물 줬다.

 지난 한파에 자동수도가 고장나서 말통에 물 받아 나르느라 신체단련이 많이 됐는데, 오늘 드디어 동파된 곳을 찾아내서 수도를 고쳤다. 무척 기쁘다. 소들은 덩치만큼 물도 많이 먹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20마리가 넘는 소한테 물을 날라주는 일은 끝없이 흘러 내리는 모래로 산을 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힘들었더랬다. 휴우~~ 

 밤에는 모처럼 시내 나들이 갔다. 옥상이 무방비로 뚫려있는 건물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곤 시내 커피숍에 혼자 앉아서 마음에 드는 글을 썼다. -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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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5일 째를 맞은 순규, 뒤에 자빠져 있는 건 순돌이

순영이 - 귀빠진 날,
새끼 낳은 날, 사람을 경계하고 있는 순영이 엄마 - 엄마소는 이름 없음

 어제 송아지 한 마리가 또 태어났다. 이번에도 어미가 알아서 잘 낳았다. 어미소 덩치가 크기 때문일까? 막 태어난 새끼가 생후 4일 째였던 순규보다 덩치가 좋았다. 사진에서는 투우소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순영이 애미는 무척 순해서 젖을 쉽게 물렸다. 고맙다. 

 아까 낮에 보니까 송아지 세 마리가 사이좋게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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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7 - 송아지

사진 2011. 2. 17. 18:52

 오늘 찍은 사진이다. 생후 6일 째를 맞은 숫송아지다. 이름은 '순돌이'다. 완전 귀엽다. 흡사 사슴 새끼 같기도 하다. 송아지들도 소들처럼 끊이없이 몸을 움찔거리기 때문에 똑딱이로 찍기는 쉽지 않는데, 몇십 장을 찍은 끝에 한 장 건졌다.

 어제도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소들 중에 한 마리가 아침 사료를 잘 안 먹길래 작은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새끼 낳으려고 하나보다고 하시면서 격리조치했다. 점심먹고 우사(牛舍)에 갔더니 암송아지가 태어나 있었다. 새끼 몸에 사료를 뿌려서 지 새끼를 외면하고 있는 어미소를 유혹했다. 어미가 핥아줘야 털이 금방 마른다고 한다. 송아지가 스스로 일어설때까지 기다렸다가 젖을 물렸다. 어미소가 젖멍울때문에 아파서 그런지 계속 발길질을 했다. 그래서 작은아버지랑 나는 앞다리랑 뒷다리를 한쪽씩 묶는 극단적이 방법을 선택했다. 어미는 많이 아팠는지 묶인 뒷다리로 연신 발길질을 했다. 

 오늘 오후에 가서 계속 관찰했는데, 젖멍울이 많이 풀렸는지 어미가 어제처럼 새차게 젖을 찾는 새끼를 뿌리치지 않았다. 사료를 먹은 다음에는 새끼를 막 핥아줬다. 감동적이다. 어제 나온 녀석 이름은 '순규'로 정했다. 젖을 실컷 먹은 순규는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완전 귀엽다. 올해 나오는 송아지들은 順 자 돌림으로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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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에 삼십 시간동안 1m 가까운 눈이 내렸다. 어제는 눈사람도 만들고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오늘은 눈 치우느라고 힘들었다. 강릉에 와서 처음으로 허기를 느꼈다. 이번 눈에 비닐을 새로 씌우려고 했던 하우스 두 동 중에 한 동이 무너졌다. 외양간 지붕도 조금 내려 앉았다. 몸도 지치고 눈 피해도 입었지만 눈이 가득 쌓인 동네는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어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소똥을 치운일도 즐거웠고, 놀러온 친구와 차가 다니지 못하는 대로를 함께 걸었던 일, 눈을 헤치며 길을 내서 집에 도착한 일도 즐거웠다. 작은아버지랑 작은어머니의 생활에는 눈이 온 것에 대한 낭만이 없는데, 내 생활에는 낭만이 있다. 생활에는 낭만이라는 것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번같은 눈이 두 번 정도 더 온다면 내 생활에도 낭만이 없어질 것 같긴 하다.

 오후에 소가 새끼를 낳았다. 송아지가 나오는 장면을 처음 봤다. 작은아버지랑 함께 송아지 다리를 붙잡고 어미소 뱃속에 있는 녀석을 힘껏 잡아당겨 꺼냈다. 소도 송아지도 사람도 힘든 시간이 지나고 송아지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작은아버지는 갓 태어난 따끈한 송아지를 울타리에 걸쳐 놓고 깨끗하게 닦아주셨다. 나는 새 생명의 뜨거운 열기를 두 손으로 느끼면서 녀석을 붙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감촉이었다. 작은아버지는 양수 때문에 막혔을지도 모르는 송아지의 콧구멍에 입을 대고 빨아들이고 뱉어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셨다. 저녁에는 송아지한테 젖을 물리기 위해서 젖병을 빨게 했다. 젖을 빨고 이틀만 지나면 펄쩍펄쩍 뛰어다닌다고 한다.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사진도 찍어주고 친하게 지내야겠다. 

 짤방은 멀리서 송아지를 지켜보고 계시는 작은아버지,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계셨더라면 이 사진이 올해의 베스트 샷이 될 뻔했는데, 아쉽다. 손에 들고 계신 것은 눈삽인데 눈 치우는 용도 보다는 다른 용도로 활용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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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눈이 와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외양간-이라고 부르기엔 규모도 크고 나름 현대식 설비를 갖추었다.-앞에 만들었다. 세 마리를 만들었는데, 얘가 제일 처음에 만든 녀석이다. 프란츠 카프카를 닮은 것 같아서 맘에 들었다.

 오후에 소 밥주러 올라갔다가 2호랑 3호를 만들었다. 왼쪽에 눈깔을 두 개 박아 놓은 녀석이 2호다.

 그리곤 밤 사이에 미친듯이 눈이 왔고 눈사람들은 봉우리가 되었다.

 어제 한군이 놀러와서 시내에 나갔다가 자고 들어왔다. 눈 때문에 차가 다니질 못했다. 한군을 집에 데리고 왔다. 우리 동네에는 사진만큼 눈이왔다.

  
 외양간에서 작업중이신 작은아버지, 당분간은 이 사진이 올해의 베스트 샷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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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소는 발굽이 두 개다. 구제역은 발굽이 두 개인 동물한테만 생긴다. 

 예전에 강릉에서는 구제역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소가 있으면 소 혀에 왕소금을 박박 문대거나 발굽사이에 생긴 수포(물집)를 인두로 지졌다고 한다. 그래놓고 소가 살아남으면 좋고 죽으면 죽는대로 잡아 먹어서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구제역은 치사율이 높지 않다.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라 기억해 둔다.


 사진에 찍힌 젖소는 이름이 '얼룩이'다. 물론 젖소들은 다 얼룩얼룩하다. 얘는 낯을 많이 가려서 사료를 먹다가도 사람이 다가가면 사료통에서 고개를 뺀다. 그리고 다른 소들한테 힘에서 많이 밀리는지 자기 몫을 잘 못 챙겨 먹었었다. 같은 칸에 있는 소 다섯 마리 중에서 가장 먼저 새끼를 낳을 소인데 다른 애들에 비해서 너무 말랐다. 그래서 요즘에 특별관리하에 두고 엄청나게 많이 먹이고 있다. 그랬더니 약간 살이 붙는 것 같다. 

 사진은 약간 사나워보이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엄청 순하게 생겼다. 


 가운데 있는 소가 '먹쇠'다. 먹쇠는 얼룩이랑 같은 칸에서 살고 있는데, 사료 먹을 때,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우악스럽게 처먹는다. - 나머지 소들은 대체로 고개를 쳐박고 먹는다. - 작은아버지가 가끔 "이 새끼 또 고개를 쳐들고 처먹네."라고 하시면서 사료 먹고 있는 놈 이마를 툭툭 때리신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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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 소

사진 2011. 1. 19. 19:10
 어제 오후에 모처럼 혼자서 일했는데, 덕분에 소를 찍을 수 있는 여유가 잠깐 있었다.


 차를 세우고 우사 안으로 들어가면 소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릴때가 있다. 소들이 나를 보고 '이 새끼가 사료 주러 왔나.' 싶어서 그런것같다. 작은아버지가 가끔 새벽 네 시에 아침밥을 주러 가실 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소들이 '이 새끼가 미쳤나.'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소들한테는 나도 작은아버지도 다 <이 새끼>일 뿐이다. 
 똥 치운지 얼마 안됐는데, 다시 똥들이 쌓여간다.
 

소 두마리가 짚을 빼 먹고 있는데, 한 마리가 뒤에서 슬금슬금 기어간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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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지나가다 한 개씩 따 먹는다. 따기 귀찮은때는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는다. 씻어 먹을때도 있지만 대충 속만 쏙 빼먹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500년도 넘었다는 동네 은행나무인데, 논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위쪽은 죽었고 아랫쪽은 살아있다. 향후에 내 논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제 트럭 타이어 빵꾸나서 손 놓고 있던 중에 하늘이 좋길래 잠깐 동네 출사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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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 소

사진 2010. 10. 21. 19:47


실내에서 똑딱이로 소 찍는 거 정말 어렵다. 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셔터스피드는 잘 나와봐야 30분의 1초다.
19마리 소 중에 내가 이름을 지어준 게 세 마린데, 얘는 그 중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소를 정면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마랑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검색을 통해서 하마는 소목 하마과의 동물이고 코뿔소는 말목의 동물이라는 걸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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