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심하게 취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며 우산을 편다
비바람이 분다
발걸음이 무겁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무겁다
시지프스가 나와 같았을까
뒤집어 지려는 우산을 붙잡고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산처럼 무겁다
10분만 걸으면 집이다
얼른 가서 쉬고 싶다
온 몸을 우산과 함께 앞으로 기울인다

나를 막아선 것이 바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비만 내린다
그런데도 우산이 뒤집힐 지경이다
대취한 줄 알았는데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방금 내 옆을 지나간 미녀에게
오늘밤 시간이 있는지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자면 발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제길

내 집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텅빈 거리에 나만 혼자 남있다
나를 막아선 것이 빗방울인 줄 았았는데
이제 보니 비는 처음부터 내리지 않았다
화가 나서 우산을 집어 던졌다
우산이 빛이 되어 달을 향해 사라졌다
중력이 사라진 듯 내 발걸음이 바람보다도 빠르다
내 걸음이 내 시선을 따라 달에게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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