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긁다
머릿결이 시작되는 정수리에 딱지가 앉은 걸 알았다
딱지를 뜯어내자 몸 가장 높은 곳에서 피가 솓아 올랐다
퐁퐁퐁 퐁퐁퐁
급한 마음에 먹고 있던 수박씨로 구멍을 막았다
잊고 살다가 그 자리에 싹이 돋은 것을 알았다
머리를 감고 밥을 먹으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줄기가 굵어지고 잎이 무성하더니 꽃이 피고 수박이 달렸다
그제서야 머리 꼭대기에 식물 하나씩 키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사람은 소나무를 키우는군
나도 나무를 키웠으면 좋았을텐데
저 고추는 어떻게 겨울을 날까
내 수박도 얼어죽지 않으려면 털모자를 준비해야겠군
세상엔 이름 모를 식물들이 사람 숫자 만큼이나 많군 
다들 생활이란 명분으로 정수리에 구멍 하나씩은 파고 있지
안심한 나는 주먹만큼 커진 수박을 툭툭 쳤다
퉁퉁퉁 퉁퉁퉁
기분좋은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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