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워낭소리 | 1 ARTICLE FOUND

  1. 2009.03.17 20090317 - 주인집 할머니의 워낭소리 1

지금 집으로 이사온지 7년 조금 넘었다. 반지하라고 할 수 없는 반지하와 2층이라고 할 수 없는 2층을 지나 3층이라고 할 수 없는 3층이 우리집이다. 그러니까 우리집 주인 아저씨는 3.5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소유하고 계시다.(음식 배달 시킬때 어디는 2층이라고 해야 우리집으로 오고 어디는 3층이라고 해야 우리집으로 온다. 많이 곤란하다!) 

암튼 주인 아저씨 어머니가 우리 할머니랑 동갑이니까 지금 80이 훌쩍 넘으셨는데, 노인들의 폐지 수거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갔던(정확한 시기가 기억이 안 난다.) 때부터 어디선가 나타난 곤색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면서 동네 폐지 수거를 하신다. 폐지만 수거하는게 아니라 고장난 전자렌지, 텔레비젼 같이 돈이 될만한게 있으면 일단 다 가져오셔서 파신다. 한 몇 개월은 몸이 안 좋아서 쉬기도 하셨지만 몸이 좋아지셨는지, 또 계속 온 동네 폐지 수거를 하신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할머니가 유모차랑 한 몸이 되서 다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가끔 집으로 가져오신게 너무 무거울 때는 우리 형제들에게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시기도 한다.

몇년 전에 식당 이모가 할머니 욕하면서 뭔가 너무한다고 했었는데,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폐지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다는 맥락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는 직접 들은 바, 폐지 수거로 모은 2000만원을 며느리(주인집 아줌마)가 노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할머니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느껴졌다.

며칠전에 오랜만에 집 앞에서 할머니를 마주쳤는데, 유모차를 미는 힘에 기대서 겨우겨우 걷고 계셨다. 물론 유모차에는 종이가 한 가득 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워낭 소리에서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가 소가 끄는 쟁기에 매달려서 논밭을 기어다니시며 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런데 워낭소리에 이런 장면이 나오던가?)

개인적으로 주인집 할머니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모아둔 돈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고(가계부채 탕감, 손주의 결혼자금 등), 근본적으로는 그 돈이 할머니가 4.5층에 위치한 옥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무기가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친구도 생기고 일도 적당히 하셨으면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동네는 집 앞의 노인회관에도 사람이 있는 걸 거의 본 적이 없고 이상하게 노인 보기가 힘들다.)

남의 집안일을 조금 과격하게 쓴 감이 있는데, 어쨋든 포인트는 주인집 할머니와 유모차의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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