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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9 20081219 - 외할머니

어제는 외할머니 제사였다.

외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딸들이 다 그 솜씨를 닮았다. 결과적으로는 외손자, 외손녀들이 복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어딘가 썼던 것 같은데, '외할머니' 검색에 아무 내용이 없는 것을 보니 이 곳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다시 기억을 살려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나 써보려고 한다.

경상북도 영주시에 서천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영주에 갔을 때는 1급 상수원 보호 구역 같은 걸로 선정되어서 물놀이가 금지되어 있었다. 암튼 그 다리 아래 흐르는 개울(개울이라지만 엔간히 넓다.)에서 이모들과 외삼촌들이 어린시절 물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도 그 다리 밑 개울에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왔었는데, 나와 내 동생, 둘째 이모 아들 이렇게 셋이서 어느 여름 다리 밑에 놀러갔다. 어디가 아팠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내가 급 아파져서 내 동생과 이모 아들만 물놀이를 시작하고 나는 다리 아래 그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나만 거기 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분 나빠하고 있었는데, 외할머니가 그림처럼 나타나셔서(당시면 60대 초반이셨다.) 나를 토닥이시면서 금방 만드신 호박 부침개를 내 놓으시며 먹여주셨던 것이었다.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고 내 인생에서 가장 맛 있었던 기억이다. 당연히 그때 이후로 호박 부침개를 좋아한다. 또 이모들의 증언으로는 내가 갓난쟁이였을때, 할머니가 올라오셔서 나랑 엄청 많이 놀아주셨다고 한다. 나를 포대기로 업고 신월동의 코스모스 밭을 걸었을 할머니를 생각해 본다. 그때도 하늘에는 비행기가 쌩쌩 날아다녔겠지...엄마가 늙으면서 외할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아간다.

제사로 돌아와서 여러가지 사정상 막내이모의 원룸에서 단촐하게 진행됐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제사에는 항상 마지막에 커피가 올라온다. 외할아버지 제사에는 불을 붙인 담배도 올라온다. 나는 이모들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좋다. 제사가 끝나고 이모들이 어차피 우리 이름도 없다면서 족보를 내다 버리자는 의견을 냈다.(내놓으면 종이 줍는 사람이 금방 들고 간다면서...) 외삼촌들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고 생각한다. 

둘째 이모 아들(나랑 동갑임)이 오래(5년쯤?) 놀다가 올해 초에 코스트코에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어느 방 없는 가족에 대한 텔레비젼 다큐를 보다가 여자는 어디가서 설거지 해서 150 벌고 남자는 짱개 배달해서 170 벌면 되겠다고 해서 약간 짜증이 났다. 셋째 이모가 돈 그렇게 주는 곳이 없다고 하셔서 잘 마무리 됐다. 가족이 거리를 떠돌도록 뭘 한거냐고 다시 한 번 말해서 또 짜증이 났는데, 그냥 참았다. 떠돌고 싶어서 떠도는 가족이 어디있을까? 애들을 고아원에 맡기면 되는 걸 알아도 그럴수 있겠는가? 노모에게 애를 맡기러 갔다가 아니다 싶어서 도로 데리고 오는 심정은 어떨까? 오죽했으면 취재를 허락했을까? 제법 오랫동안 놀았으면서도 그렇게 현실감각 없는 말을 하는 이종사촌 아이가 멀게 느껴졌다.(중학생때 이후로는 계속 멀게 느끼고 있다만) 왜 정규직을 안 구하고 비정규직을 구하냐고 해서 한 대 치고 싶었는데.. 참았다. 결국 티비의 5인 가족은 32만원에 어느 모텔에서 한달간 살기로 했다. 이모가 열심히 꾸려나간 기사식당 덕분에 신월동에 집이 있을 뿐이고 딸내미는 대학원에도 보냈는데... 그런식으로 얘기할 수 있다니... 많이 잘못됐다. 이러니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집에 돌아와서 백분토론의 마지막 두 발언을 봤다. 김제동이 저는 양비론은 아니구요...라고 했다. 
요즘의 대세는 대안없는 양비론인 것 같다.
대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예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도 대안이 없는게 아닐까?
그래.. 나는 대안없는 양비론자다. 

마지막 문단을 지울까도 싶지만 일단 내버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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