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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2 - 세밑

그때그때 2008. 12. 22. 11:37
세밑이다. '밑'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지만(뭔가를 찾을때, 어디어디 밑에를 보라고 하는게 첫번째로 떠오른다.) 막상 써보니 좀 어색하다. 세밑을 맞아 주말에는 내내 집에 있었다. 기타를 못 잡은 것이 좀 아쉬웠고,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드래곤퀘스트5'를 거의 다 깼다. 주인공을 제외한 동료들의 작전을 최강으로 맞춰놓고 마법없이 힘으로 떼우는 동료들을 중심으로 파티를 구성해서 보스를 잡고 엔딩을 봤다. 내가 컨트롤 하고자 했을때는 모든 동료들을 잃고 실패했었는데, 자동으로 싸우게 하니까 쉽게 보스를 잡았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자동이 아니고 강한동료도 곁에 없고 힘으로만은 안되는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게임을 하나? 나는 정통 일본식 RPG를 좋아하는데, 귀찮은 마법보다는 몸으로 떼우는게 좋다.

아싸 내일 월급날이다. 

내가 잠들때 하는 오래된 공상들이 있다. 한다기 보다는 반쯤 무의식의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인데, 한 마디로는 강철가시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강철 가시들로 둘러쌓인 계곡을 내가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어떤 형벌이나 탈출의 상황(시지푸스를 떠올리면 되겠다.)에서 미끄럽고 날카로운 차가운 강철 가시들을 부여잡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인데, 아래는 날카로은 가시들이 나를 향해 있고,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고 두려움에 떨며 위를 향해 올라가려 애쓰지만 손은 차갑고 발은 미끄러워서 금방 미끄러지고 만다. 그렇면 나는 가시에 몸을 관통당해야 하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보니 내 허벅지의 안쪽이(항상 다리부터 떨어진다.) 가시를 스치면서 그 찬 기운을 느끼고 이제 곧 몸이 관통당하려는 찰나에 공상이 깬다. 그리고는 잠들때까지 무한반복이다. 비슷하게는 만지면 손가락에 구멍이 나는 날카로운 철조망을 어쩔 수 없이 오르는 상황도 종종 떠오른다.

어제는 조금 달랐는데, 내가 새총의 총알이 되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사됐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 몸은 저항 때문에 활처럼 휘었고 내가 날아가는 곳은 강철 가시가 촘촘히 박힌 어느 벽이었다. 내 온 몸이 가시에 박혀 문드러지는 상상을 하다가 잠들었다.

그래 나는 그냥 날카로운게 싫은거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고통의 도구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가지런해진다'(http://silentsea.pe.kr/269)는 표현을 읽고 마음속으로 형상화 하기 위해서 꽤나 노력했는데,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맥락 상으로는 내가 행복해 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그냥 유순하게 받아들인다.(고통을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로) 정도가 되겠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고통의 도구들이 나를 고통으로 몰고가려고 하지만 나는 행복에 대한 욕망이라는 지팡이를 땅에 꽂고 결계를 쳐서 튕겨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단지 결계를 치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로 고통의 도구들을 쳐내야 한다. 궁극의 마법으로 모든 고통을 잠재워주는 누군가가 나타나는 것은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개개인이 뭉치고 안 뭉치고를 떠나서 일단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자동으로 싸워주는 동료는 현실에 없다.

나는 대안 없는 양비론자이며 절대 다수이지만 정작 힘은 쥐뿔도 없는 무당파의 일원이지만 지팡이를 뽑아내고 싶다.

이적 노래 중에 '나아지겠지'란 곡이 있는데, 막연한 기대는 더 이상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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