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레디메이드 인생 | 1 ARTICLE FOUND

  1. 2009.09.17 20090917 - 그냥 뭐라도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에 보면 주인공 아저씨가 주머니에 들어 있는 30원(지금이라면 30만원?) 정도를 가지고 18번을 곱절하면 엄청난 액수가 되니 신문사를 열어서 자기를 채용하지 않은 신문사 편집장 코를 납작하게 해 주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헉슬리의 '토요일 오후'에는 허름한 주인공이 공원을 산책온 미모의 두 여인을 보고 그녀들 중에 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결혼까지 하는 공상을 하다가 위험에 빠진 그녀들의 개를 도와 주면서 악당개에게 물리고 이 상황까지 자신의 공상이 적중하자 더욱더 그녀들과의 결혼을 기정 사실화 하는 상상을 하지만 그녀들은 거지 같은 행색의 그에게 돈 몇푼을 던져주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린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헛물(이나) 켜고 있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헛물을 켜고 있었을까?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라디오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것?
 적게 벌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 = 가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
 모든 일이 다 잘 될거라고 막연한 기대와 근거없는 자신감에 몸과 마음을 맡긴것?

  너무 주체적인 부분이 부족한 삶을 살았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시스템과 상관없이 어떤 주체성을 갖고 있어햐 하는데, 그런면에서 나는 0점이고 나를 포함한 누구도 내게 미래를 기댈 수 없다. 엄청 슬픈일이다. 올 초에도 주체성 얘기를 하면서 새해 결심과 앞으로의 살아갈 방향을 정했었는데, 원점근처로 되돌아 와 버리는 과정에서 깊은 혼란이 있었다. 변산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살아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 경험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그 동안 서울에서 자연스럽게(혹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보다 더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주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거침없이 살아야겠다.

 사라마구의 '모든 이름들' 속의 주인공 처럼 일상 속에서 극대한 자극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말로 헛된 공상이다. 공상은 공상으로 끝나는 게 좋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지금까지의 나도 잘 해왔던 것 같은데........... 크게 내 마음을 엇겨나가게 산 적 없는 것 같은데...........

 사는 게 어렵고 어지럽고 쉬워도 어지럽고 봄날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아름답게 무너지기도 하고 흰 꽃가루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두둥실 거리기도 한다.


 두 작품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로또 복권을 사고 일주일을 기대에 부풀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이번주에는 오랜만에 로또를 사야겠다.

 그냥 뭐라도 적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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