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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9 20110109 - 담배 5

20110109 - 담배

그때그때 2011. 1. 9. 19:17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합정역에 갔다. 작년에 타워 크레인 사망 사고가 났던 합정역 자이 공사 현장을 지났다. 공사장 외벽에 '모두가 꿈꾸는 그 곳'이라고 써 놨다. 담배를 물고 현장앞을 지났다. 시간은 오후 1시였다. 공사장 안쪽에서 한 무리의 인부들이 오후일을 시작하기 위해서 수런거리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공사장 입구에는 인부 한 명이 고개를 떨군채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불이 켜지지 않는다. 아저씨의 몸동작에서 고장난 라이터에 대한 원망과 체념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아저씨 앞에 가서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내밀었다. 아저씨랑 내 눈이 삼 초 정도 마주쳤다. 아저씨는 얼른 불을 붙이고 나한테 라이터를 다시 건냈다.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며 모두가 꿈꾸는 그 곳에 사는 꿈을 꿀까? 그 아저씨랑 나 사이에서 한 마디 말도 없었던 10여 초 동안 흘렀던 공기의 흐름이 내 마음속에 지금도 남아있다.

 그르니에가 담배에 대해서 썼던 글에 보면 담배의 가장 훌륭한 효과가 어떤 특정한 순간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계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다음 대목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담배를 끊기 위해서는 담배 대신 다른 것으로 그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염주를 굴리는 것 - 바닷가에 가서 담배를 입에 무는 대신 염주를 굴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 훌륭하게 담배를 대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담배를 끊고 싶지가 않다. 나한테 담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타인데, 기타는 일단 부피가 커서 항상 가지고 다니기는 어려운데다가 담배를 입에 물고 기타를 치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대신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보다는 훨씬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흡연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종국에 가서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주 희소한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된다. 모두들 담배를 끊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대에 흡연이야 말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the last one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랑 정서적으로 너무도 다른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와 내가 같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빠서 담배를 끊어버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었는데, 낮아지는 흡연율은 그런 기분이 들 상황들을 줄여줄 것이 분명하다.

 담배 끊기 싫다는 얘기를 너무 길게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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